약속

초청17

by 다날

꿈이 됐어. 희망이기도 하고.


지금처럼 아메리카노란 이름이 없을 때도 나는 커피를 마셨어. 커피 하면 다방커피, 믹스커피가 전부이던 아침에 원두를 내려 블랙커피를 마셨지. 임신을 하고 모유수유를 끝낼 때까지 단 한 모금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

단지 내 배 안에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 다른 엄마들에 비해 모성애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고작 내 신념을 지키고자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한 건 아니었어. 그냥 그렇게 되는 거였어.

당연히 기억나지 않겠지만, 진통이 시작되고 세상으로 나오기 전까지 나는 혼자 있겠다 했어. 예상은 했지만 출산의 고통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프더라. 엄마든 아빠든 심지어 애 아빠든 누가 내 옆에서 손을 잡고 조금만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것조차 짜증과 분노로 들릴 거 같더라. 그래서 다 나가라 했어. 몇 번 더 힘을 주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어.

그런데 사람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라도 잊기 마련인가 봐. 다음 해에 동생이 생겼지. 그 말이 맞더라. 사람은 항상 가치를 비교하며 산다는 말. 솔직히 잊을 수 없는 고통이지만, 내 아이가 나를 보며 울고 웃고, 먹고 자며 숨 쉬는 모습에 너무 행복하더라. 고통은 지우는 게 아니라 너무나 큰, 비교할 수 없는 행복에 가치라고 이름을 바꾸는 것 같더라.

뭐든 처음은 다 어렵고 소중하잖아. 동생은 간혹 얼린 이유식을 녹여서 먹이기도 했는데, 첫 아이에겐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지. 그날그날 최대한 신선한 재료로 장을 봐서, 먹을 때마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지. 심지어 재료마저 냉장고 한 번 들어간 적이 없었어.

동생이 어릴 때 많이 아팠어. 자연스럽게 신경이 둘째로 쏠릴 수밖엔 없었지. 아무리 누나라도 어린아이라면 한 번쯤은 질투할 법한데, 나보다 더 동생을 아껴줬어. 그 모습이 미안할 적도 많았지만, 어찌나 예쁘고 대견하던지, 정말 사랑스러웠어.

시간이 지나 교복을 입었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생기는 시기 같더라. 나는 첫째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오래 해서 음악으로 진로를 선택할 줄 알았어. 그런데 돌연 하기 싫다고 하더라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했어. 바이올린을 하면서 목도 허리도 맨날 아파했거든. 대신 애가 공부를 하겠다고 하더라고. 그럼 그러라고 했어. 아직 가끔 왜 엄마가 몰아붙여서 음대 가게 하지! 하고 투정 섞인 원망을 해. 물론 그땐 나도 조금 아쉬웠지, 참 잘했거든. 그리고 어느 날 이렇게 원망을 할 거라고 예상했어. 하지만 절대 후회는 안 해. 원망할 대상이 없는 삶은 힘들거든. 그리고 자기가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는 것도 힘들거든.

참, 어릴 적 얘기를 하니까 끝도 없네. 명절에 친가나 외가를 가면 첫째는 정말 사랑 많이 받았어. 투박한 가정에 부드럽고 따뜻한 생크림 같은 아이였어. 그런데 사랑을 받기만 하는 아이는 아니었어. 사랑을 줄 줄 아는 아이였어.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속이 깊었어.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선물을 보냈어. 무려 이십 년 동안 말이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때때로 맛있는 걸 먹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도 보내드리고, 좋은 곳을 가면 보여 드렸지.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우표를 사야 한다고 돈을 달라고 하더라고. 왜라고 물으니, 할아버지한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야 한다더라. 처음에는 내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 크리스마스 카드 써서 보내 드리자, 하며 시작했던 일을 내가 까먹었던 게 저 해였어.

그런데 있잖아. 가족들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아무리 딸에게 사랑을 줘도, 때론 싫은 말을 할 때도 있었어. 그건 절대 용납이 되지 않더라. 내 욕을 하는 건 얼마든지 더 떠들어 봐라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니까, 괜찮으니까, 눈을 당당히 뜨던 사람이었어, 나란 사람은. 하물며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를 혼낼 때도, 내가 왜 혼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를 때까진 인정할 수 없었고, 이유가 납득되지 않으면 죄송하다고 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있잖아. 내 딸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참지 못하겠더라. 아이가 듣지 못하더라도, 그냥 그런 말이 세상에 흩날리는 것만으로도 싫고 무섭더라. 그게 누구든지 용서할 수 없었고, 그게 몇 년이 됐든지 잊지 않고 기억해. 뒤끝 장난 없지?

최근에 친할아버지가 아프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했었잖아? 그때 사실 할아버지가 사실 수 있는 희망과 확률은 없었어. 더 이상 주사 바늘 주렁주렁 꼽고 중환자실에 묶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홀로 바라보는 것 말곤 할 게 없었지. 아니면 임종실에서 가족들과 대화하다 편하게 눈을 감는 방법도 있었지. 아이의 큰아버지부터 고모, 작은 아버지까지 모두 당신의 자식들이니 당연히 쉽게 보내드릴 수 없었겠지. 이 집 식구들이 어느 자식들보다 효자라는 건 나도 인정하거든. 결국 중환자실에서 사실 수 있을 때까지 보자 했었잖아? 그때 딸이 그랬어. 일단 밥이나 먹자고 다 같이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어. 근데 그때 그러더라고. 나 같은 아이도 알겠는데! 어른들이 그건 몰라요! 할아버지가 힘들잖아요. 자기들 입장 말고 할아버지가 어떨지 생각해 보라고요! 막 퍼부어댔지. 그 순간 그 어떤 어른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순간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놀랬어. 처음엔 친부모의 생사를 결정짓는 일에 며느리가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고, 손녀인 너도 아빠와 같은 자식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차에서 가르쳤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단 걸 느꼈어. 또 아이가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버릇없어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됐어. 나는 애를 따로 데리고 나가 진정시켰어. 애 아빠가 식구들한테 그랬다더라. 방금 딸이 한 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밥 먹을 사람은 가서 밥 먹으라고. 나는 아닌 것 같다고.

결국 화장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도 내 딸이었어. 나조차 속이 울렁거려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밥을 먹고 왔거든. 가정마다의 문화일 수도 있지만, 존중해야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사랑한 사람이 죽어가는 길에서 진심으로 나와 같은 방법으로 애도할 줄 아는 사람이 내 딸이라 대견하고 좋았어.

요즘 들어, 애 아빠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 동생이 차를 산다고 했을 때 타고 싶은 차 골라 와, 딸이 갖고 싶은 옷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아빠한테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보내 놔, 하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그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게끔 해 줄 수 있으면 우리가 이재용이게? 그래, 이재용이면 그렇게 해 주겠지. 그런데 나는 이재용도 이부진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나는 나 스스로 어떤 벽을 세웠어. 해 주고 싶은 건 다 해 줘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선에서만 해 주기로. 그렇다고 애 아빠가 미안해할 정도로 우리가 못 해 준 것도 없지만 말이야.

나는 그래. 내 신념은 내가 설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이고, 그걸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 그래서 내 교육관 중 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 한 약속은 절대 지킨다야. 지키지 않을 약속은 절대 웃어넘기는 소리로도 하지 않아. 뱉는 순간 그건 지켜야 하니까. 그게 무엇이든 내 마음과 달라도,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특히 우리 딸이랑 한 약속은 더더욱.

그래도 부족함 없이 키우려 노력했어.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내가 나한테 쓰는 돈을 아껴가며 아이들에게 썼지. 후회도 미움도 없어. 왜냐면 그게 너무 행복하거든. 그래서 애들이 학교 다닐 땐, 다른 부모들이 그랬어. 네 아이들은 나중에 사회 생활 하기 힘들겠다. 그렇게 다 해 주면 성인이 돼서 어른이 돼서 아무것도 혼자 못할 텐데. 틀린 걱정이라 생각하진 않았어. 하지만 난 믿었어.

네 말을 듣고 알았는데, 우리 딸도 엄마와 아빠의 노력과 마음을 잘 아는 듯하네. 멋지게 성장하는 중인 것 같네. 물론 이미 충분히 알고는 있었지. 자기가 누리는 게 당연한 게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살아간다는 것, 혼자 해내야 할 일은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것, 참 잘 커 줘서 고맙지.

아무리 내가 사랑해서, 또 아무리 내가 가장 많이 아껴서, 들인 시간과 노력이 내 몫이 가장 커서, 내 아이를 내 것이라 생각해선 안 돼. 이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유기체로 여겨야 해. 단지 언제나 무슨 경우에도 내 편 하나 정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 수 있게끔 하는 게 내 일이자 엄마의 일이겠지. 때론 아이가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보다 절실하게 자기 일을 임하지 않을 땐 쓴소리도 해야지. 그게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야.

나는 말이지. 내 딸이 언제든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고. 그렇게 아프지 않고 예쁘게 살면 좋겠어. 약속이야.


- 내가 아끼는 사람의 엄마가 -


함께 했던 수많은 약속을 어설프게라도 지키지 못한 순간이 후회됐다.

적어도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충분히 배우고 산 아이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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