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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픽로그 K Oct 24. 2021

무당 인생 30년, 만신 이해경과 나

만신 이해경과 나

   나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 무속에 대해 전혀 몰랐다. 국문과 대학원생이니 신화는 잘 알았지만 굿이 무언지, 무당이 어떤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무당’이라는 말에 짙은 화장, 다소 부자연스러운 얼굴, 화려한 금붙이 장신구를, ‘굿’이라는 말에 동물을 죽이고 피를 뿜어내는 장면을 떠올렸다. 내 기초지식은 아마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과 비슷한 정도일 것이라 짐작한다. 무속을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예로부터 무당과 굿이 갖는 의미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무당은 세상을 살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벅찰 때 찾는 인생의 선배이다. 남들은 잘만 공부해서 대학 가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좋은 직장 취직하고, 멋진 취미 생활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느껴질 때. 하는 일마다 안 풀리고 매일 학교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야단만 맞을 때. 그럴 때면 세상만사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존재가 있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봐주고 앞날을 예언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럴 때 찾는 존재가 바로 멘토이고, 무당이다. 

   그러나 무당을 내 인생의 조언자, 길라잡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무당의 영검을 시험한다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유투브 영상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에게 무당은 그저 흥밋거리일 뿐이다. ‘무당’이라 했을 때 사람들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는, 일종의 사이비 교주 같은 존재를 떠올린다. 아무런 근거 없이 사람을 현혹하기에 내 일이 잘 안 풀렸을 경우 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욕받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무당이란 그런 존재일 뿐이다. 우리를 만났을 때 선생님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기도 하다.   

  


무당으로 30년 살다 보니 회의감이 가장 커. 무당이 지금 이런 형태로 가도 되는 건가, 이대로 유지돼도 좋나 생각이 많아. 요새 시대가 급변하면서 어지럽고 혼란스럽잖아. 이런 사회에서 무당과 굿에 대한 본질이 너무 사라지고 상업적인 요소만 남는 게 안쓰러워. 굿의 진짜 원형은 사라지고 시대에 맞춰 변형되는 굿이 생겨나잖아. 그렇게라도 남아줘서 고마운 건지, 그렇게 악을 담아서 남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이 복잡해.


   1991년 내림굿 받은 이후로 무당 인생 30년, 중요무형문화재 김금화 선생님의 제자, 한일월드컵 축하공연 진행,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쁘레따뽀르떼 이상봉패션쇼 오프닝스테이지 진행, 오스트리아 샤만&치유협회 초대굿 참여, KAIST 초대공연 진행, 예술의전당 한지공예 전시회 출품, 무당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 메인 테마 인물, 자서전 <혼의 소리, 몸의 소리> 출간.

   무당 이해경의 경력은 얼핏 살피기에도 화려하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당 중 하나이다. 화려한 경력만큼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도 무수하다. 존경만큼 시샘도 많이 받는다. 선생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당의 모습과 다르다. 항상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검정 옷을 즐겨 입는다. 길을 지나가다 봤다면 무당인 줄 몰랐을 차림이다. 다만 눈빛은 매섭게 살아있어서 아우라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우연한 기회로 선생님과 매주 인터뷰를 하며 한 계절을 보냈다. 그 작업이 나에게 준 의미가 커서 글로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한국의 토속종교로서 무속이 가진 의미, 오랜 세월 사람들의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고 위로를 건넨 무당의 참된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울고 웃고, 가끔은 신기하다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갔던 사람과 지하철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말은 그만큼 큰 자극이 되었다.      


   신하고 나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면 눈물이 나. 분명히 그 존재에게 은혜를 받았는데, 은혜와 가필을 받은 것 만큼 전달이 안 될 때가 있는 거야. 죽을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싶어. 항상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고 기도하거든. 신은 큰 골자를 알려줘. 그러면 내가 파장을 맞추어 해독을 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하거든. 이게 30년을 해도 참 어려워.     


   내가 선생님과 나눴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무당 이해경의 시각에서 무속과 무당을 풀어내고 싶다. 무속의 천지신명과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신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고, 무당이 찾아온 손님과 나누는 대화를 일종의 상담이라 여기고 심리학 상담 과정과 비교해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속과 무당을 둘러싼 편견을 되돌아볼 것이다. 자신을 사제라 생각하고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최선을 다하는 무당. 이런 무당이라면 한 번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무당이 올바른 깨우침을 갖고 이 사회에 존재한다면 어느 종교인보다도 친근감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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