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이해경과 나
무당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당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하루 세끼 밥을 먹고 결혼하여 아이도 낳는다. 태어날 때부터 무당으로 나는 게 아니기에, 그들에게도 당연히 가족이 있다. 무당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기에 무당 일을 하면서 가족과 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무당이 되면서 태어나 함께한 가족과 멀어진다. 가족들이 무당 되기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가족들이 뱉은 모진 말들은 쉽사리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무당? 무당이라고! 얘 우리 집안에는 그런 사람 없다. 이젠 별짓, 다하고 사는구나? 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 너 집안 망신시키기 말고 나가서 그냥, 네 손으로 죽어라. 무당질하는 것보다 죽는 게 훨씬 낫다. 그냥 죽어라. 그거 사람으로선 못할짓이야. 너 그게 얼마나 힘들고 천한 생활인데 그걸 모르니? 나가서 네 손으로 목숨 끊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식구들 모르는 곳으로 멀리 떠나버려. 산속에 들어가서 무당질을 하든, 아주 먼 곳으로 가서 무당질을 하든 아예 내 앞에는 나타날 생각을 하지 마라!"
이해경 자서전 <혼의 소리 몸의 소리 상(上)> 230-231쪽
가족과의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무당이 되어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꾸려도 문제다. 생활 패턴이 일정하지 않고 사회에서 따가운 시선을 많이 받기에 결혼생활이 평탄치 않다. 아들딸이 태어나면 갈등이 커진다. 무당의 아들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부모를 향한 미움이 쌓이는 경우도 많다. 커서 종교라도 가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무당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부모와 연을 끊겠다는 자식도 있다. 부모가 말도 안 되는 미신에 빠져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식과 큰 다툼이 없다 해도 그 자식이 결혼이라도 한다 하면 또 걱정거리가 한가득이다.
“나는 내가 무당이라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떳떳이 밝히려고 한다. 내 나름대로는 무당으로서의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딸아이의 남자친구 부모님에게는 내가 무당임을 밝히지 못했다. (…) 딸아이는 고맙게도 엄마가 무당이라고 반대하는 집안으로는 결코 시집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고맙다는 표현을 하긴 했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소리나 진배없다. 행여 딸아이가 엄마가 무당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까지도 사회에서의 인식이 이러하다.”
이해경 자서전 <혼의 소리 몸의 소리 하(下)> 257쪽
이런 상황이기에 눈물 나는 사연 없는 무당이 없다. 이런 삶이 있었노라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작위적이라 손가락질 받기 십상일 정도이다. 딸에서 여자, 아내를 거쳐 어머니까지 어느 시절 하나 굴곡지지 않은 곳이 없고 구불구불한 굴곡마다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다. 한 발자국 떨어져 무당을 관찰하는 우리에게 그들의 상처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나부터도 이해경 선생님과 인터뷰하며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선생님이 너무 스스로를 틀에 가둔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긴 시간을 두고 사귀어 보니 상당수의 무당들은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즉흥적인 기분에 흔들리는 면이 많아 함께 일을 의논하고 실행해 나가기가 어려웠다. 힘없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 힘에 약했다.”
황루시, <우리 무당 이야기> 20쪽
한국 무속의 권위자 황루시 선생님 또한 그의 책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드러낸다. 범인(凡人)인 우리는 무당의 생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 해서도 안 된다.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다 보면 판단이 개입한다.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유를 따져 묻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금세 편견이 생긴다.
무당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뉜다. 무당과 관련 없는 삶을 살다가 신이 내려서 무당이 되는 강신무와, 무당일을 집의 가업으로 삼아 계승하여 무당이 되는 세습무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당, 즉 앞날을 예측하고 숨겨진 과거사를 맞추고 신병이 걸려 신내림을 받는 무당은 강신무이다. 신내림은 신어머니가 내린다. 여기서 신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스승이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은 가족의 품을 떠나 스승 밑에서 아주 오랜 기간 수련하며 굿과 무당 생활 전반을 학습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굿을 하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될지, 무당으로서 정체성을 정립한다. 수련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월급이 보장된 것도 아니기에 이 생활은 아주 고단하다.
강신무는 신을 받지 않으면 ‘신병’이라 불리는 증상을 겪는다. 이유도 없이 몸이 아프고 열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무당으로 살다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 그만두려 할 때도 신병이 나타난다. 가까운 가족이 갑자기 죽기도 한다. 그래서 무당에게 직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내 선택인데 선택이 아니기도 한, 반강제적인 직업이다.
“무당일이 너무 힘든데 그만둘 생각은 안하셨어요?”
“포기하면 나는 아파. 내가 힘들어서 ‘나 못하겠어요. 신령님 나 놔주세요. 나 그냥 평범하게 다른 걸로 먹고 살겠어요’하고 손을 딱 놔. 한 열 번 그런 과정이 있었어. 그러면 2-3일은 괜찮아. 근데 3일 째부터 온 몸에 기운이 없어서 밥을 못 먹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서 삶이라고 볼 수 없게 흘러가. 최장 버텨본 게 한 달인데 아무것도 못 해. (…) 그런걸 ‘몸을 친다, 광이 내린다’ 이렇게 불러. 신의 뜻을 관철하려 신이 인간 몸을 치는 거야. 내 몸이 고통이 오면 살아있는 시체가 되잖아. 그게 너무 무서워.”
무속에서 신의 선택은 아주 집요하다. 한번 선택되면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일단 무당이 되면 신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무당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신과 인간의 중재자이지만 사제로서 인정받지는 못한다. 무속에서는 한 사람이 종교에 입문하여 전문가가 되기까지 어떠한 지원도 없다. 재단이 있어서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신어머니가 굿을 내서 거기서 얻은 돈으로 제자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제자뿐만인가 굿판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음식을 마련해주는 분들의 생계 또한 신어머니의 손에 달려 있다. 이밖에도 상에 올리는 음식 준비와 소품도 모두 개인이 부담한다.
아이 한 명 낳아 키우기도 드는 돈이 끝이 없는데 하물며 이 경우는 어떠하겠나. 여기에 가족이 있으면 가족을 부양할 돈이 따로 필요하다. 게다가 걸핏하면 무시당하기도 일쑤다. 무당의 열등감은 여러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적인 고립,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자신이 낳은 딸과도 소통할 수 없는 슬픔이다. 그 슬픔을 우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그저 손 내밀어 어깨를 감싸 안을 수밖에 없다. 무당에게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존경은 그들을 사제자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당에 대해 접근하기를 꺼려할 뿐 아니라 근거 없는 공포심까지 표출한다. 내가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연구한다고 무당 가까이 하다가 혹시 신들리면 어떻게 해요?’ 내 대답은 좀 날카롭다. ‘무당 공부한다고 무당되면 바퀴벌레 연구하다가 바퀴벌레 되겠네요.’ 나는 신들린 무당에 대한 사람들의 근거 없는 공포가 짜증스럽다. 사회의 편견이야 어찌되었든 무당은 사제자이다.
어느 사제자가 신의 선택 없이 되는 경우가 있단 말인가. 무당이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신의 선택 때문이었다는 대답은 사실상 모든 신앙 고백과 상통하는 말이다. 신부가 되었든, 목사이든, 승려이든 모두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자신의 운명을 신의 은혜로 받아들여 사제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당과 다른 사제자는 그 가는 길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일반 종교와 달리 무속 신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사제자 노릇이 기껍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내린 무당들은 누구보다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황루시, <우리 무당 이야기> 176쪽
이해경 선생님을 만나 오랜 시간 인터뷰하며 선생님은 나에게 자주 “내 이야기가 쓸모가 있겠니?”라고 물어보셨다. 그 질문이 무당 인생만 30년, 전문가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나는 너무 슬프다. 오랜 세월 동안 이른바 후려치기 당했을 장면이 떠올라서.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홀리는 못된 무당이 있기에 부정적 시선이 생기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무속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시선을 조금만 바꿔보자. 무당도 인간이고 사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