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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픽로그 K Oct 24. 2021

인생은 맷집싸움

   이쯤 되니 이해경 찬양자 같지만, 선생님과 하는 인터뷰의 모든 내용이 감명 깊었던 건 아니다. 선생님이 제자 이야기를 하실 때는 슬쩍 제자 편을 들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 강신무에게는 신어머니가 있다. 무당과 관련 없던 사람이 무당이 되었으니, 무당으로서의 가치관과 굿 여는 법 등을 배워야 한다. 신어머니는 일종의 스승이자 사회적 어머니인 셈이다.      


   신어머니한테 배우는 교육은 지금 다 사라졌어. 원래는 신어머니의 품성, 신어머니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으로 무당을 하는가를 배워야 해. 일종의 정신 교육이지. 갑자기 무당이 되는데 어떤 정신으로 무당이 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손님 점 봐주고 먹고 살려고 무당 된 거 아니잖아. 그런 건 점쟁이지 무당이 아니야.      


   무당이 되면서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낸 가족과 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기에, 신어머니는 스승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성인이 되어 만난 제2의 어머니다. 신어머니 밑에서 먹고 자고 굿이 있으면 모든 것을 같이 준비한다. 집 떠나와 보내는 시간이 편안할 리 없다. 고된 나날의 연속이다. 그러니 견디지 못하고 수련 생활을 그만두고 떠나거나 다른 신어머니를 찾아가는 신딸, 신아들이 많다고 한다. 인터뷰 당시 선생님은 제자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제자들의) 제일 큰 문제는 간절함이 없다는 거야. 우리는 배도 고파보고 정말 간절했단 말야. 근데 지금 애들은 간절해서 무당이 된다고 하지만, 너무 풍족하게 자랐어. 그러니까 왜 내가 여기서 신어머니 수발을 들어야 하고 신어머니한테 배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거야. 내가 왜 여기서 이런 해야 하지? 유튜브 보면 금방 할 것 같은데. 수련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배우지 않는 거지.      


   선생님이 말하는 ‘간절함’이 나에게는 조금 무거웠다. 돈도 못 벌고 수련하는 과정이 계속된다니 말만 들어도 숨이 막혔다. 신딸, 신아들의 처지가 국문과 대학원생인 나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과에서 순수학문으로 구분되는 철학과, 사학과, 국문과 대학원생의 처지도 비슷하다. 지도 교수님 밑에서 공부는 계속 되는데 끝나는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문과는 프로젝트가 많지 않아 월급도 없다. 선생님 제자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며 그걸 다 버텨야 꼭 간절할 걸까, 반항심도 생겼다.

   봄에 이 얘기를 듣고 시간이 지나 가을에 선생님을 다시 만나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데 전과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간절함을 조금 다르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건 간절함이 없어서가 아니라 맷집이 약해서가 아닐까. 선생님이 맷집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닐까. 살다 보면 맷집이 필요하다. 맷집이 없으면 사는 게 힘들어진다. 언제 어디서 키우느냐에 따라 맷집을 키우는 과정이 살짝만 힘들 수도 있고 더 많이 힘들 수도 있다. 


   돌아보면 내 20대는 맷집과의 싸움이었다. 20대의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는 맷집이 약해서 가는 곳마다 죄다 얻어터졌다. 처음 크게 얻어터진 건 영화판에서였다. 연극영화과를 다니니 영화 제작 현장에 참여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방학 동안 작은 상업 영화 스태프로 일했다. 3개월 동안 일하면서 상처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일 힘든 것도 힘들었지만 인간관계에서 상처가 깊었다. 꾸역꾸역 일을 다니다가 거의 도망치듯 그만뒀는데 그걸로 욕도 많이 먹었다. 한번 크게 얻어터지고 나니 그 뒤로는 무언가를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가족들과도 사이가 안 좋을 때라서 더 그랬다. 

   나는 평생 내가 얻어터지고만 살 줄 알았는데 국문과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첫 회식을 한 후에 사람들이 너무 따뜻해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물론 사람이 따뜻하다 해서 그 뒤의 일이 술술 풀린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도망치지 않을 힘은 얻을 수 있었다. 너무 도망치고 싶은데 버티니까 약간의 맷집이 생겼다. 맷집은 버텨야 생긴다. ‘존버’의 미덕이라고 할까. 

   사는 게 참 개떡 같아서 인생 굴곡의 파도는 언제든 온다. 내가 맷집이 생긴 건 기가 막히게 알아서 그다음 파도는 전보다 더 높고 험하다. 근데 또 그걸 견디면 맷집이 강해진다. 그 과정이 무수히 반복된다. 이 파도를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도를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러니 너무 과하게 버틸 필요는 없다. 상처 입으면서까지 버티면 그건 병이 될 뿐이다.


제자들이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해. 근데 나의 생각을 따라가긴 힘들어해. 지금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옛날에 고생했던 시절이 있다는 걸 생각 못하는 것 같아. 지금 내가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힘든 시간이 있는 거잖아. 근데 그 힘든 시간은 넘기고 평안하기만 바라더라구.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게 '존버'의 시간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서 성공을 얻는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 혹은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 모두 남들은 알지 못하는 존버의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남들이 모르는 실패가 있다. 다만 그게 남들 눈에는 잘 안 보일 뿐. 

   나는 선생님의 제자를 모르기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이 그만둔 일을 간절함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간절함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견뎌야 맷집이 강해진다는 뜻이었다면 그 말에는 공감한다. 


존버는 맷집을 부르고 맷집은 평안한 삶을 부른다. 인생은 맷집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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