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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픽로그 K Oct 24. 2021

독한 상담

   선생님의 상담은 무척 직설적이다. ‘무당은 무의식을 끌어내 주는 삶의 조언자’라는 선생님의 말처럼 상대방의 가치관을 꿰뚫어보고 어설픈 위로나 공감보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바꾸는데 중점을 둔다. 가치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했던 행동들이 결국 자신을 힘들게 했음을 알게 되면 더 이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되어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말처럼 선생님의 상담은 고민을 갖고 찾아온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곤 한다. 선생님은 이런 상담을 ‘독한 상담’이라고 하며 한 60대 여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나이가 좀 있는 여성이 조심스럽게 선생님을 찾아왔다. 내성적 성격의 이 여성은 선뜻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풀어주니 자식 때문에 왔다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보통 나이 든 여성이 무당을 찾는 이유는 크게 3~4가지다. 남편 바람, 자식 문제, 건강 아니면 돈 문제이다. 이 중에서 자식 문제가 상담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남편이나 건강, 돈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쉽게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부모 입장에서 자식만큼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다. 

   이 여성에게는 40대 초반 딸이 있었다. 직업이 약사인데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4~5년 전부터 방에서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딸아이를 그냥 놔둘 수 없어 어르고 달래고 싸워도 봤지만 소용이 없어서 결국 선생님을 찾아온 것이었다. 선생님은 먼저 딸의 사주를 봤는데 자기가 자기를 태워 죽이는 사주였다. 선생님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이 애는 절대 안 나옵니다. 당장 지원을 끊으세요!”
“정말 안 나올까요?”     


   선생님은 다시 한 번 강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일본이 히키코모리 때문에 난리인데 우리나라도 늘고 있어요. 얘네들은 불편한 게 전혀 없어요. 부모가 먹을 거 다 대주지 하루 종일 인터넷할 수 있지, 밖으로 나올 이유가 없어요. 지원을 끊어야 되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자식 하나 없는 셈치고 버리세요. 그러면 아이가 자기 스스로 죽든지 살든지 결정할 겁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그 아이 팔자에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식을 키워본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선생님은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인데 자식을 버리라는 조언을 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그 여성이 살기 위해서는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상담은 이어졌다.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는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삶에 간섭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모든 결정을 자식에게 맡겨야 합니다. 자식이 선택하고 부모가 따라가야지요. 내 자식이니까 내가 죽을 때까지 가르치고 끌고 가려 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부모로서 노력했잖아요. 최악의 경우 자식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자식의 선택입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여성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초로의 여성이 아직까지도 자식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위로만 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 일부 무당들은 딸아이에게 귀신이 들었다며 굿을 하라고 하고 또는 부적을 써야 한다거나 치성을 드리라며 무속신앙과 관련된 해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물론 무속신앙과 관련된 해법들이 그 여성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히키코모리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 여성과 상담을 하며 자신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는 그 여성에게 독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어. 그렇지 않으면 같이 죽으니까. 내 아들이 5살에 죽었어. 그때 나는 아들이랑 같이 죽으려고 했어. 근데 7살 딸이 보이더라고. 내가 죽으면 딸아이는 엄마와 동생을 다 잃는 거잖아. 그렇게 할 수는 없었지. 그래서 아들 보내고 3일 만에 나와서 일했어.

 

   이런 아픈 경험이 선생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 여성 역시 선생님의 조언에 가슴 깊이 공감했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싶다. 눈물을 흘리는 여성을 보며 선생님은 나지막이 이야기하셨다.     


당신이 죽으면 애는 어떻게 할 거예요? 당신이 살아야 애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버리세요. 죽었단 소리 들려도 그냥 죽었나보다 하고 사세요.    


   자식이 방에서 나와 전처럼 약사로서 사회생활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고자 선생님을 찾았던 여성에게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결론이었을 것이다. 굿을 하면 달라진다거나 이사를 하면 좋아진다는 등의 처방을 내렸다면 그 여성에게 일시적인 위로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이 아니기에 그 여성은 또 다른 무당, 또 다른 해결책을 찾아 방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선생님의 상담은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는데 주안점을 둔다. 자식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부모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자식의 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겠다는 부모의 욕심, 그 생각과 욕심 때문에 자신의 삶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지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신의 위엄이 있다. 선생님 역시 내 뒤에 신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삶의 해결책을 전할 수 있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선생님의 조언을, 인간을 통한 신의 이야기로 믿고 받아들일 때 상담의 효과는 커지는 것이다.

  상담 말미에 그 여성은 “그렇지 않아도 다음 달에 내보낼까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과연 그것이 맞는지 확신을 갖지 못할 때 무당을 찾곤 하는데 이 여성이 그랬던 것이다.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딸아이를 나오게 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썼는데 되지 않자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내보내는 것이 맞나, 내보내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생님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또한 자식을 내보내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선생님과 상담을 끝낸 이 여성은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자신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 40세 딸에 대해 더 이상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식의 인생은 자식에게 맡기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큰 힘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자식을 버리라고 한 독한 상담이었지만 결국 이 여성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 상담이 된 것이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그 여성은 내 말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마지막에는 자식을 내보내는 것이 맞다며 확신을 갖고 돌아갔어.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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