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내가 해야 하거나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해. 사람들은 자라면서 의식으로만 세상을 살고 무의식을 잊어버리고 살게 되지. 무당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사는 무의식을 알게 해주거든.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행동 양식의 변화를 주는 것이 상담이잖아. 그 무의식을 꿰뚫어보고 가치관을 바꿔줄 때 고단수의 상담이 되는 거지. 그래서 무당은 예언자이기도 하지만 삶의 조언자이기도 해.
무당이 의뢰인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과정을 상담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건 무당과 점쟁이의 차이를 모르기에 보이는 반응이다. 무당은 단순히 돈을 받고 앞날을 봐주는 점쟁이가 아니다. 예부터 무당은 상담사의 역할을 하며 원과 한을 풀어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이와 다르게 앞날을 예측하여 악재를 피해 가도록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의사들은 상담사 자격증이 있잖아. 지식과 이론에 의한 상담을 하는 거야. 공인된 상담사인 거지. 우리는 공인되지 않았지만 직간접적인 경험과 거기에 신이 주는 영감을 합쳐서 상담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론적인 상담을 아닌 거지.
선생님 말씀처럼, 무당은 자격증이 없다. 정식으로 심리학과 상담 과정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당과의 만남을 상담이라 할 수 있을까? 상담은 내담자가 효율적 및 자발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심리적인 특성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원조하는 역할을 뜻한다. 내담자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심리적 조력의 과정이다. 즉 누군가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끄집어 내서 행동 양식에 변화를 준다면 그 과정을 넓은 의미로서 상담이라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행위에 꼭 상담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인생의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고민 상담이라 하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주목하지 않고 무의식을 끌어내려면 보통의 상담에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담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담자가 상담사를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때까지 친근감 형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된다. 당연히 시간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반면 무당에게는 무의식을 꿰뚫어보는 신의 능력, 영검이 있기에 내담자의 무의식 속 고민을 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에게 소리를 한다는 것, 누군가는 이런 무당의 모습을 일종의 ‘콜드 리딩’으로 생각할 할 것이다. 콜드 리딩은 심리학자, 점쟁이, 영매 등이 사용하는 기술이다. 상대방의 말투, 비언어적 표현, 나이, 패션, 헤어스타일 등을 빠르게 분석함으로써 많은 정보를 얻는다. 콜드 리딩은 일반적으로 높은 확률의 추측을 사용하며, 그들의 추측이 올바른 방향인지 아닌지에 대한 신호를 빠르게 포착한 다음, 우연한 연결을 강조하고 강화하며 놓친 추측에서 빠르게 나아간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콜드 리딩이 효과가 있는 이유로 포러 효과를 든다. 사람들은 막연하고 일반적인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에, 콜드 리딩의 결과 나온 막연한 이야기를 자기에게 이롭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당들은 심리학 이론을 공부한 학자가 아니기에 '콜드 리딩'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자세히 알고 사용할리 없다. 그들에게 콜드 리딩은 본능이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어떤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우리가 흔히 신(神)기, 용한 능력, 영검이라 부른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관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자격증이 없어. 심리학자, 의사에게는 믿음이 있으니까 돈을 많이 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럼 무당에 대한 믿음이 뭐가 있겠어. 무당이 모시고 있는 신의 힘을 빌려 꿰뚫어 맞추는 게 신뢰인 거야.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초장에 한두 가지를 딱 맞춰서 신뢰를 줘야 해. 그게 바로 신이 나한테 주신 능력이야. 직관력과 통찰력, 그걸 영검이라고 하는 거지.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궁금하고 신기해요.
그 영검은 설명할 수 없어. 설명이 안 되는 걸 설명해달라고 하는 게 무모한 질문인 거지. 예를 들어 (질문자를 보면서) 너한테는 타고난 우울한 기질이 있어. 그게 느껴져. 이걸 잘 활용하냐에 따라서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고 잘 될 수도 있어. 그럼 그 기운을 잘 풀어서 좋은 길로 이끌어 주는 무당이 되고 싶은 거야. 내가 무당을 상담가라 부르는 이유지.
무의식을 이끌어 내는데 필요한 것이 무당이 가진 영검함과 직관이다. 어떤 사람이 고민을 갖고 무당을 찾았을 때 심리검사와 같은 절차 없이 그 사람의 문제를 알 수 있는 것이 신이 무당에게 준 능력이다. 그동안 살면서 겪은 직간접 경험과 신이 주신 영감을 합쳐서 상담을 하는 것이다. 심리학이나 상담이론에 입각한 상담이 아니기 때문에 내담자가 감추려고 하는 면이나 수치심까지 끌어낼 수 있게 된다.
나는 현실적인 무당이야. 현실적으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그게 안 되면 비현실적인 방법을 하는 거지. 주술적인 행위가 필요할 때는 하지만 구태여 그게 필요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이러한 상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비밀 보장이다. 현대의 전문상담사, 고해신부, 무당 등 상담을 하는 모두는 개개인의 사생활과 비밀 보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공통된 윤리이며 선생님 또한 그 점을 강조하셨다. 사례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사례를 얘기하는 건 굉장히 예민한 일이야. 내가 무당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정들의 간절한 마음들을 많이 듣고 봤잖아. 그런데 자기 홍보하느라고, 자기 영검하다고 자랑하기 위해 그들의 아픈 내용을 다 떠들어대는 것이 나는 너무 싫었어. 그 사람이 모를 것 같지? 결국 돌고 돌아 다 알게 돼.
무척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거듭되는 요청에 선생님은 몇 가지 사례를 풀어주었다. 그 행위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선생님이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글로 써도 된다며 허락해준 이유기도 한 그것. 무당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나를 통해서 가치관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 이런 거를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당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걸 알리고 싶거든. 돈 밝히는 무당이 다가 아니야. 무당은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이웃집 상담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