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바왕이다. 수능을 마친 고3 겨울방학 편의점 알바부터 시작해 빵집, 패밀리레스토랑, 마트, 외국인학교 도서관 보조, 스터디카페, 회사 사무보조 등등 웬만한 알바는 다 해봤다. 알바 하면서 모은 돈으로 학기중에는 생활비를 쓰고 방학에는 여행을 갔다. 수업은 자체 휴강해도 알바는 절대 안 빠졌다. 가족들은 부모님 카드를 받아 쓰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 했지만 그러기에는 돈을 벌어 자유롭게 쓰는 재미가 컸다.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을 때라 엄마 카드를 쓰면 내 일상이 모조리 들통나는 것도 싫었다. 대학생 때 알바는 자유와 반항의 상징이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월세와 생활비를 위해 알바를 했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알바비가 여윳돈이었다면 혼자 살면서부터는 알바비가 내 삶의 중심이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대학원 진학을 반대했던 엄마에게 손을 벌릴 수 없어서 홀로 고군분투했다. 조교로 근무하며 학비를 벌고 저녁에는 스터디카페에서 알바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지도 교수님이 프로젝트를 하면 거기에 속해서 일하고 선배들이 알바를 주면 그것도 받아서 했다. 연구실에서 일하고 과제하다 2-3시에 퇴근해 다음날 조교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극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여서 피곤에 쩔어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때의 일은 내 고민과 걱정에서 도망갈 수 있는 현실 도피 수단이었다.
스스로를 갉아 먹는 상황이 오래 갈 수 없었다. 금세 번아웃이 왔다. 전만큼 온 힘을 다해 일할 수 없었다. 쉬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일을 했다. 일을 그만 두지 못해서 상담도 받았다. 일을 그만 두지 못한다는 말이 웃기지만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브레이크 없는 KTX에 올라탄 기분이랄까. 운전자도 나고, 승객도 나인데 도무지 기차를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느낌이었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난 변함없이, 새벽까지 일을 했다. 박사공부를 마치고도 나는 일을 놓지 못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할 때니 돈 신경쓰지 말고 공부에 매진하라는 교수님 말에도, 사람의 기력은 제한적이니 다른 일에 기운 쓰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일을 했다. 너는 왜 일을 놓지 못하니 질문도 많이 들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번아웃이 와서 상담을 받으면서도 변치 않는나를 답답해했다. 나에게 돈은, 일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선생님은 어릴 적 집이 형편이 좋지 않아 서러운 일이 많았다. 그러다 신내림을 받고 무당 일을 하며 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됐다.
최상의 생활과 최하의 생활을 오고 가며 다양한 방면에서 겪고 있잖아.
이걸 거꾸로 나를 돌이켜보면, 나의 가정환경이나 나를 봐서 내가 겪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을 겪게 해준 게 신이야. 신명이 아니었으면 겪거나 누릴 수 없었던 것들 신 때문에 다 누렸어. 그랬는데 이 과정을 겪으면서 신이 나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를 계속 생각을 해.
선생님에게 돈은 신께 받은 선물 중 하나로 사명감과 연관된다. 신을 더 잘 모실 수 있게 하는, 믿음을 깊게 하는 요소이다. 신에게 감사하면서 신의 뜻을 더욱 잘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많은 사람 중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고민하며 사제로서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신을 모시며 얻은 부가적인 요소이다.
그러다보니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상담과 굿을 해주고 벌은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를 깊게 고민한다. 사람들의 힘든 사정을 생각하면 돈을 쉽게 쓸 수 없다고 했다.
굿을 하는데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나 경제적인 상황이
다르니까. 돈이 있는 집에서 굿을 해서 돈이 남으면 그걸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그런데 정말 가난한 사람이 굿하고 20-30만원 주는 걸로는 비싸고
좋은 음식을 못 사먹겠더라구. 돈의 쓰임과 해야할 것 안 해야할 것을 구분하는 것. 그것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에 하나야.
그렇다면 나에게 돈은 무엇일까? 앞으로 변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내가 찾은 답은 '헛된 인정'이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내 선택을 지지받지 못했을 때, 돈은 유일하게 내 선택을 지지하는 것 같은 친구였다. 무리해서 일하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처음 시작은 돈이 필요해서였지만 나중에는 필요보다 인정의 수단이 됐다. 내가 무리해서 돈을 벌면 엄마가 나를 인정해줄 것 같았고, 덜컹이는 현재가 평안해질 것 같았고 그럼 나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헛된 인정을 위해 나는 20대 내 귀중한 시간과 기력을 쏟아부었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도 그게 문제라는 것도 몰랐다. 마음의 병이 든 후에야 내가 원했던 인정은 돈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다. 돈이 아니라 나를 지켜가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사실도.
나는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떻게 하면 맑고 깨끗하고 예쁘게 나를 지켜갈 수 있나를 고민해.
지금도 나는 일을 놓지 못한다. 감당하지 못할 양의 일을 끌어안고서 허덕이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온다. 반복된 일의 굴레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다만 꼭 지키려 노력하는 몇 가지 규칙이 생겼다. 일주일에 세 번 나를 위한 요가 시간을 꼭 지키기, 일요일은 아무 생각없이 쉬기, 일 속에 나를 두지 말고 내 삶 속에 일부로 일을 두기, 일에 치여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놓치지 말기 등등. 30대는 보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일이 줄어든 내 생활을 무엇으로 채워야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내면을 채워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돈으로는 통장만 채우자. 돈으로 마음을 채울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