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핸드폰

by HAN

으앙. 으아앙.


구정을 지내고 집으로 올라가는 KTX 수원행 열차 안.

3살쯤 된 남자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친정과 시댁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나 피곤해 앉자마자 잠이 들었던 나.



15열차의 그 칸이 쩌렁쩌렁 울리는 울음소리에 순간 달콤했던 잠이 확 깼다.

그것은 바로 대각선 앞 좌석에서 벌어진 일.

그 아인 분명 탈 때 평화롭게 엄마품에 안겨 자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이 기차칸의 모두에게 확실히 알리고 있었다.


분명한 발음도 아닌데 분명 내 귀엔 "해에드퍼언~해에드퍼언!" 이라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몇 번을 반복했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온몸으로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듯 흔들어 댔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질 듯 엄마품에서 아슬아슬하게 붙은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첫 번째 고비의 순간.

앞에 앉은 아빠는 조용히 하라고 낮고 무서운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이미 아이는 보지도 듣지도 않으리라 눈을 꼭 감고 시위 중.

엄마는 그런 아이의 입을 급하게 막아보지만 터져 나오는 소리에 속수무책. 그 순간 얼굴 빨개지게 부끄러운 건 엄마, 아빠의 몫일뿐.

결국 1차전은 무승부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힘겹게 안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뜨거운 시선을 피해 15 열차칸을 빠르게 도망가듯 밖으로 쫓겨 나간다.


그리고 5분 뒤,

곧 다시 엄마와 돌아온 아이는 모두가 보란 듯 2차전을 바로 시작.

빨갛게 터질듯한 얼굴로 누가 이기나 보란 듯 더 크게 울어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윈 엄마, 아빠나 신경 쓸 일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결국 5분도 못 버틴 아빠는 엄마에게 무소음으로 급하게 세팅한 핸드폰을 던지듯 주고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들이민다.


아이의 승리.

세상은 갑자기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고 아이의 눈물은 뚝.

처절한 엄마아빠의 패배다.


두 눈감고 그렇게 악을 지르며 울던 아이에겐 어느새 눈물방울만이 눈가에 그렁그렁 남아있을 뿐. 이젠 반대로 눈을 번쩍 뜨고 세상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제 아이는 알게 되었다.

사람 많은 곳, 떼쓰고 울면서 5분 정도 2번만 잘만 버티면 내가 원하는 그 세상 재미난 핸드폰이 내손에 들어오고 원하는 유튜브를 볼 수 있단 것을.






사실 자던 아이가 울면서 심심해하거나 답답증을 느끼면 장거리 고속열차 안에서 최소 2,3시간을 버텨야 하는 부모로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없다. 그래봤자 기차중간 지점을 찾아 나가보거나 좋아하는 과자를 주거나 결국 서로에게 가장 길고 편안한 시간을 보장해 주는 핸드폰 시청이다.


9년 전 그렇게 나 또한 지금의 내 아이가 한창 어릴 땐 몇 년간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쳤다. 결국 명절이나 여행마다 기차나 차에서 핸드폰을 주구장창 보여주지 않기 위해 그 해결책을 찾아 머리 쥐어뜯으며 나름 고심했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방법은 기차에서 버틸 새로운 장난감과 놀잇감 미리 찾기.


우리 부부의 고민은 그렇게 보낼 시간들에 대비해 한 주 전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가격대가 좀 올랐지만, 그때도 지금도 1000원 마트. 집 앞 다이소가 우리에겐 최고의 선택. 그래서 그 당시 다이소 거의 모든 장난감과 게임 종류를 알고 있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아이가 많이 어릴 땐 클레이, 각종 색칠공부, 최신판 공룡 스티커, 미니 보드게임들을. 좀 컷을 땐 카드게임, 자석 장기판, 체스등 아이가 평소에 본 적 없는 새롭디 새로운 아이템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곤 몰래 숨겨두었다가 하나씩 버티기 힘겨운 순간이 오면 짜잔! 하고 꺼냈다. 그리고 아이가 더 커선 직접 그 시간들을 버티고 보낼 꺼리를 손잡고 가 미리 고르게도 했었다.






문득 돌아보니 지금은,

바로 옆자리에서 머리를 흔들며 곤히 잠든 올해 12살이 된 내 아이가 보인다. 그때 그 시절을 보내온 아이와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앞칸 힘겨워하는 부부가 잠시 안쓰럽게 느껴지는 순간, 그들에게 난 따뜻한 위로의 미소를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