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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Mar 30. 2023

내 아이의 기질이 가끔은 무섭다.

타고난 것이 지배하는 삶

생각해 보면 원래 그랬다.


2년 6개월째. 열다섯 번의(사실 이후부턴 그마저도 세지 않게 되었다) 해리포터 23권 시리즈 정주행. 이렇게 그 책을 오래도록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의 아들. 반면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책을 좋아하길 바랐던 내 맘은 점점 냉정하게 해리포터만 좋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그와 더불어 아이가 다르다고 생각될 때쯤  진지하게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11개월.

아이는 그때부터 걷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포대기가 아닌 땅으로 내려와 매일 집 가까이 애버랜드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새 놀이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살부터였지 싶다. 그때 아이의 몇 년간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곳. 

바로 자동차왕국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놀이기구 안내를 도와주고 항상 츄파춥스 사탕을 손에 줘어 주던 대장누나먼저 퇴사를 하며 아쉬워 눈물짓던 이야기는 우리의 비하인드스토리로 남아있다.




5살까지 3년간을 집에서 그 놀이를 또 주구장창 하고 더니  다음으로 꽂힌 곳은 바로 동물의 세계, 사파리월드였다.

집으로 오면 온갖 놀잇감을 다 끌어모아 사파리를 만들고 자신은 탐험대장이 되어 목소리 톤까지 그대로 재현하며 논 것이 또 7세까지니 2년 반.


더 전으로 거슬러가 보니 생후 5개월.

모유수유와 함께 이유식을 할 시기였다. 매번 이유식 만들기가 너무 힘들고 귀찮아 나름 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잡고 만들기 시작. 대형솥에 두 가지 메뉴(예를 들면, 표고버섯이유식, 단호박이유식)를 일주일치 양으로 왕창 만들곤 나눠서 냉동보관해 하나씩 그때그때 꺼내 먹였다. 아이가 물론 좋아하는 메뉴이긴 했지만 같은 것으로 반복해서 줘도 지겨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너무 잘 먹어줬었다. 지금생각해 보니 그것도 참 신기하다.






이쯤 되자 남편과 나는 아이의 그런 한번 몰입하면 몇 년씩 가는 패턴에 대해 좋고 싫고는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도 없지만, 우선 장단점을 따지기 전에 저거 누굴 닮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나였다.

어릴 땐 몰랐다. 난 지극히 평범한 생김새에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색깔의 여자아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스무 살쯤 때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대체 넌 왜 사과맛 데미소다만 그렇게 마시냐고. 옆에서 보는 자기가 지겹다며. 정말 그 당시 난 그 음료수에 심각하게 꽂혀 있었다. 너무 좋아해 물처럼 꽤 오랫동안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그것만 고집하다 어느 날 너무 질려 정말 세상에서 다신 보지 말자며 안녕을 고하고 뚝 끊어버렸다.

한번 꽂히면 무섭게. 그것이 음식이든 음료수든 책이든 무엇이든.


신혼 때였던 것 같다. 남편이 재미로 하던 앵그리버드란 핸드폰 게임에 난 그만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째 거의 잠을 못하고 새벽까지 머리가 아파올 때까지 놓지 못했다.  어떤 날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남편이 자다가 깜짝 놀라 뭐라고 한 것도 여러 번. 그쯤 되니 나도 남편도 뭐 시작을 아예 하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장편 드라마, 장편 소설에 손을 대면 다른 것은 다 내팽개쳐 버리고 오직 그것만 끝을 볼 때까지다.

끝까지 다 볼 때까지 해치워야만 하는 이 성격. 기질.


그건 바로 나의 것이었다.

기억이 안나서인진 모르지만 내 아이가 되고 옆에서 보니 속 터지는 것 플러스 나보다 오래가고 반복하는 것이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의 아들인 것 같기도 하다.






작년 가을엔 큐브에 꽂혀 엄마, 아빠, 할머니, 고모, 친척형누나들까지 모든 가족들에게 만날 때마다 가르치고 시합을 해대더니 겨울이 지나 6개월 정도로 그나마 그건 짧게 끝난 듯하다.


아이가 요즘 아침마다 6시에 일어나하는 것은 최근 꽂힌 카드마술이다. 15가지 마술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유튜브 찾아보고 노트에 정리하고 하나씩 완벽해지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밥 먹을 때도 놀 때도 눈뜨고 자기 전까지 시작과 끝이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모습에 가끔 많은 인내와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마음속 저 아래 깊은 곳에선 사실 알고 있다. 누구보다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문득 보여 응원도 막음도 없는 그 중간쯤이 되는 상태가 된다.






따뜻한 햇살의 오늘 아침 11시.

글을 정리하기 위해 집 근처 자주 오는 카페에 왔다.

주인장은 환한 미소와 함께  말없이 카드를 받고 결제를 해 준다. 지난여름부터 변함없이 주문 중인 나의 시그니쳐 메뉴는 바로 아이스크림카페라테와 호두 휘낭시에 하나.


아직은 이 메뉴와 안녕을 할 때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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