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6개월째.열다섯 번의(사실이후부턴그마저도 세지 않게 되었다) 해리포터 23권 시리즈정주행. 이렇게그 책을오래도록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의 아들. 반면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책을 좋아하길 바랐던 내 맘은 점점 냉정하게 해리포터만 좋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그와 더불어 내 아이가 좀 남다르다고 생각될 때쯤 난진지하게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11개월.
아이는 그때부터 걷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포대기가 아닌 땅으로 내려와 매일집 가까이 애버랜드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새 놀이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살부터였지 싶다. 그때아이의 몇 년간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그곳.
바로 자동차왕국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놀이기구 안내를 도와주고 항상 츄파춥스 사탕을 손에 줘어 주던 대장누나가 먼저 퇴사를 하며 아쉬워 눈물짓던 이야기는 우리의 비하인드스토리로 남아있다.
5살까지 3년간을 집에서 그 놀이를 또 주구장창 하고 놀더니 그다음으로 꽂힌곳은 바로 동물의 세계, 사파리월드였다.
집으로 오면 온갖 놀잇감을 다 끌어모아 사파리를 만들고 자신은 탐험대장이 되어 목소리 톤까지 그대로 재현하며 논 것이 또 7세까지니 2년 반.
더 전으로 거슬러가 보니 생후 5개월.
모유수유와 함께 이유식을 할 시기였다. 매번 이유식 만들기가 너무 힘들고 귀찮아 나름 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잡고 만들기 시작. 대형솥에 두 가지 메뉴(예를 들면,표고버섯이유식, 단호박이유식)를 일주일치 양으로 왕창 만들곤 나눠서 냉동보관해 하나씩 그때그때 꺼내 먹였다. 아이가 물론좋아하는 메뉴이긴 했지만 같은 것으로 반복해서 줘도 지겨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너무 잘 먹어줬었다. 지금생각해 보니그것도 참 신기하다.
이쯤 되자 남편과 나는 아이의 그런 한번 몰입하면 몇 년씩 가는 패턴에 대해 좋고 싫고는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도 없지만, 우선장단점을 따지기 전에 저거 누굴 닮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나였다.
어릴 땐 몰랐다. 난 지극히 평범한 생김새에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색깔의 여자아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스무 살쯤 때 고등학교동창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대체 넌 왜 사과맛 데미소다만 그렇게 마시냐고. 옆에서보는 자기가 지겹다며. 정말 그 당시 난 그 음료수에 심각하게 꽂혀 있었다. 너무 좋아해 물처럼 꽤 오랫동안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그것만 고집하다 어느 날 너무 질려 정말 세상에서 다신 보지 말자며 안녕을 고하고 뚝 끊어버렸다.
한번 꽂히면 무섭게. 그것이 음식이든 음료수든 책이든 무엇이든.
신혼 때였던 것 같다. 남편이 재미로 하던 앵그리버드란 핸드폰 게임에 난 그만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째 거의 잠을 못하고 새벽까지 머리가 아파올 때까지 놓지 못했다. 어떤날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남편이 자다가 깜짝 놀라 뭐라고 한 것도 여러 번. 그쯤 되니 나도 남편도 뭐 시작을 아예 하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장편 드라마, 장편 소설에 손을 대면 다른 것은 다 내팽개쳐 버리고 오직 그것만 끝을 볼 때까지다.
끝까지 다 볼 때까지 해치워야만 하는 이 성격. 기질.
그건 바로 나의 것이었다.
기억이 안나서인진 모르지만 내 아이가 되고 옆에서 보니 속 터지는 것 플러스 나보다 오래가고 반복하는 것이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의 아들인 것 같기도 하다.
작년 가을엔 큐브에 꽂혀 엄마, 아빠, 할머니, 고모, 친척형누나들까지 모든 가족들에게 만날 때마다 가르치고 시합을 해대더니 겨울이 지나 6개월 정도로 그나마 그건 짧게 끝난 듯하다.
아이가 또 요즘 아침마다 6시에 일어나하는 것은 최근 꽂힌 카드마술이다.15가지 마술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유튜브 찾아보고 노트에 정리하고 하나씩 완벽해지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밥 먹을 때도 놀 때도 눈뜨고 자기 전까지 시작과 끝이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모습에 가끔난 많은 인내와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마음속 저 아래 깊은 곳에선 사실 알고 있다. 누구보다 익숙한 내자신의 모습이 문득 보여 응원도 막음도 없는 그 중간쯤이 되는 상태가된다.
따뜻한 햇살의 오늘 아침 11시.
글을 정리하기 위해 집 근처 자주 오는 카페에 왔다.
주인장은 환한 미소와 함께 말없이 카드를 받고 결제를해 준다. 지난여름부터 변함없이 주문 중인 나의 시그니쳐메뉴는바로아이스크림카페라테와 호두 휘낭시에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