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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Apr 21. 2023

올해도 저는 학부모 대면상담 갑니다.

우리 아이를 1년간 맡아주실 담임선생님의 얼굴과 인상을 보기 위해?

우리 아이가 지내는 초등학교 교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

아니다. 최소한 나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5년 전.

2018년 3월 28일 망0초등학교 1학년 10반 교실.

2층 복도에 아이들의 흰색 실내화가 칸칸이 놓여있는 신발장 앞. 긴장되고 떨렸다.

교실 앞문이 열린 곳으로 들어가니 동그랗고 앳된 얼굴의 우리 반 이00 담임선생님이 마침 인사를 건네셨다.


우린 참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함께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의 이야기 전에 내 이야기부터.


선생님.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심각한 음식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3살 땐 아낙필라시스(쇼크) 사고도 한번 있었고, 7살까지 아 00 대학병원 소아과에서 6개월마다 피검사를 받고 수치를 보고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 유발검사, 적응훈련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현재 많이 좋아진 상태지만 계란, 견과류는 완전히 100% 차단한 식단으로 먹이고 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3세부터 5세까지 3년간 친구들과 동일한 식단으로 맞춰 제가 도시락을 싸서 보내 지금까지 그렇게 먹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초등 아니 그 이상도 도시락을 앞으로도 쌀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면서 지금은 아이 본인이 도시락을 거부합니다. 자신은 그냥 밥에 김치만 먹어도 되니 도시락을 싸 오는 특별한 아이로 튀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아이는 누구보다 자신의 그런 상황을 잘 알지만 그래도 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생님 직접 뵙고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선생님은 조금은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너무나 잘 들어주셨다.

선생님과 아이에게 바라는 점은 오직 단 하나. 초등학교를 입학한 올해 첫 학교생활을 아이가 제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다녀 주는 것. 그때 이 이야기를 하며 나도 모르게 그만 마음이 울컥해 떨리는 목소리가 되었다. 음식 관련 두 번 다시 아이가 힘들고 아픈 경험, 굳이 할 필요 없는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도와주길.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선생님께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조심스럽게 내민 것은 아00 병원 의사의 소견서와 음식알레르기 관련 책, 동영상자료, 응급 약물(스테로이드)과 에피네프린 주사기(응급처치시 아이의 허벅지에 찔러 위급한 상황대처할 때 필요).

당연히 쓰는 방법과 양도 구체적으로 알려드렸다. 비록 경험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이 영상과 책을 보고 공부해 아이를 돕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난 또 그 순간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 후 아이가 교실에서 보이는 태도나 모습, 아이의 성격이나 친구들과의 어울리는 정도, 선생님과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는 입학 후 한 달간 선생님이 보시고 판단한 모습 딱 그 정도 이야기를 함께 나눴던 것 같다.


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다했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아이와 선생님을 믿겠다고 말한 후 고개를 90도로 깊숙이 숙여 1년간 학교에서의  아이를 잘 부탁드림을 인사했다. 교실을 나온 후 집에 오기까지 내 모습이 어땠을지 이제야 돌아보게 되는 나.






/초등 2,3 학년 때/

 9세까지 계란알레르기 적응훈련이 잘되었고 반응도 많이 줄어들어 10살부터는 메추리알장조림의 한알부터 시작해 지금은 종류나 양에 제약 없이 먹게 되었다. 물론 아이는 그 식감과 질감, 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태어나 지금까지 먹지 못하게 한 음식을 갑자기 좋아하라 말할 수 없듯 난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초등 4학년 때/

학교 점심으로 나온 마크네 카레가 문제가 되었다. 견과류 캐슈넛이 들어간 음식으로 일시적 쇼크가 왔다. 전신두드러기, 기도부음, 구토증세, 호흡곤란등의 증세가 있었고 다행히 빠른 대처로 하루정도 지난 후 대부분이 나아졌다. 견과류. 땅콩과 아몬드의 수치는 많이 낮아진 상태이다.

견과류는 일반적으로 대부분 성인까지 알레르기가 남아있는 종목 중이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도 아침반찬으로 멸치견과류 볶음을 꺼내 조금씩 먹이며 꾸준히 아이에게 적응훈련을 시키고 있다.


/2023년 3월 29일/

아이는 이제 12살, 초등5학년이 되었다.

매년 그래왔듯이 올해도 난 학부모상담주간 대면상담을 당연히 신청했다. 하지만 아이의 학년이 올라가고 학교에 가서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겐 아직도 여전히 떨리는 일이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들은 무나 다행히도 대부분 이런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했을 때, 한결같이 긴장하셨고 걱정해 주시며 같이 노력해 보자라고 말씀해 주셨다. 물론 예외로 가슴 아픈 3살 때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1년간 무척이나 신경 써야 할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거나 불편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부모로서 참 너무나 감사한다.



그리고 가끔 난 상담사로서 부모님들께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이의 장애나 문제에 대해 학교담임 선생님께 처음부터 얼마나 오픈하고 말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내 아이를 색안경 끼고 선입견 갖고 보게 되지 않겠냐고.

15년간의 상담 경험과 12살 아이를 키워오며 분명히 답할 수 있는 나의 대답은 내 아이를 맡길 담임선생님의 성향과 성격을 잘 파악해서 대처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솔직하게 다 말하길 추천드린다.


10명 중 10명다 좋은 선생님만 있거나 내 아이에게 좋은 상황만 만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내 패를 모두 까고 할 수 있는 모든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고, 내 편을 많이 만들어 놓을수록 사고나 문제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 아이는 그나마 도움을 받거나 안전한 상황에 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덜 다칠 수 있다는 것.





아이가 학교에서 급식이 시작되는 심시간.

난 언제부턴가 그 시간이 다가오면 핸드폰을 가까이 두고 몸이 살짝 조여지고 긴장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아이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만큼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우리 반 담임선생님의 보호아래 그동안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잘 학교생활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어느새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 여름으로 가는 계절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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