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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Dec 23. 2022

카레의 배신

방심은 금물.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엄마.

나 몸이 좀 이상해.


11살 아이가 하교 후 집으로 곧장 온 시간은 1시 40분.

점심으로 학교에서 나온 카레를 먹었다는데, 기침을 조금씩 하더니 온몸을 긁기 시작했다.

느낌이 뭔가.. 싸했다.

얼른 아이의 윗옷을 들춰보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이미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기침이 늘어나며 점점 숨도 가쁘게 쉰다. 왜 이럴까.

 아이는 간지러운 자신의 피부를 만지다  울룩불룩한 느낌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곤 울먹인다. 자기 몸이 왜 이러냐며.


학교 식단은 분명 평소에 아이가 즐겨 먹는 카레와 비슷한 반찬들이었는데.. 뭐지. 확인해도 모르겠다.

일단 급히 기침이 점점 심해지는 아이를 다독여 불안감을 눌러가며 옷을 주섬주섬 입혔다.

재빨리 머리 굴리기 시작.

가장 가까우면서 최대한 줄 서지 않고 빨리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은 다행히 집 앞 인기 없는 소아과. 평소엔 가지 않는 무뚝뚝한 의사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뛰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이 추운 날씨에도 손에는 땀이 차이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는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7세 이후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불안해하며 아기처럼 나의 품을 파고들었다.

"괜찮아. 의사 선생님 만나고 금방 약 먹으면 나아질 거야. "를 병원까지 스무 번은 넘게 아이에 귀에 대고 말해주었던 거 같다.




"기도가 부은 거예요. 급해요.

지금 응급으로 빨리 약처방 내려줄 테니 당장 바로 약 받아서 먹이세요. 그리고 한 시간 지나도 차도 없으면 두 번째 약 또 먹이고 상태보고 병원 오세요. 약이 세니까 재우세요."


평소 말수가 없던 의사 선생님은 무척 빠른 속도로 말하고 손을 자판으로 가져가 즉시 처방전을 내린다.


그 후 아이는  2시간이 지나도록 불러도 깨지 않고 정신없이 약에 취해 잤다. 중간중간 난 아이의 옷을 들춰 두드러기가 서서히 가라앉아감과  아이의 숨소리가 괜찮은지확인했다.

방과 후 학원일정부터 취소한 후, 학교로 전화를 건 시간은 아이가 잠든 후 3시간이 흐른 뒤.

내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서였다. 


함께 오늘의 식단을 체크해보던 담임선생님은 학교 홈페이지의 식단표에서  찾아냈다. 핸드폰 앱으로 보내주는 매일 식단보단 좀 더 세밀하게 알레르기 번호와 설명이 들어간 식단이었다.

"ㅇㅇ어머니. 여기 있네요. 마크네 카레였어요. 견과류.

제가 앞으로 좀 더 잘 챙기고 주의를 기울일게요. 영양사 선생님과도 이야기하겠습니다. "




마크네 카레?

그게 뭔가요? 우리가 평소 먹던 그 카레 아닌가요?

아니다.

캐슈넛. 인도, 브라질, 탄자니아등에서 생산되는 구부러진 형태의 견 과 류.

캐슈넛패이스트로 싹 갈려져 반죽의 형태로 오늘의 카레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 지금까지 계란을 비롯해 다양한 알레르기 유발 음식으로 고생했고 이제 남은 건 견과류뿐이었다.

그것도 땅콩과 아몬드는 알레르기 수치가 나아져 꾸준히  적응시켜서 괜찮아졌다고 믿었는데.

초등학교를 들어가 4년 동안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기에 너무 내가 방심했었나 보다.


아이는 그렇게  내리 4시간을 잤다. 

낮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어느새 밖은 깜깜해진  저녁시간.

일어난 아이는 정말 다행히 두드러기도 기침도 확연히 나아진 상태였다.


"내가 좋아하는 카레를 신나게 많이 먹었지.

그런데 목에 넘기는데 느낌이 안 좋은 거야.

그냥 좀 이상했어. 평소랑 다르더라고."



아. 

카레의 배신이다.

알레르기 유발음식들을 차단하고 또 적응훈련하면서 아이가 좋아해 평소 내가 그토록 너만은 믿고 의지했건만.


평소 알레르기 유발 음식은 식사 후 수분만에 바로 증상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 1시간~2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타날 수 있단 것을 알게 되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무슨 음식에 눈에 안 보이는 형태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주의하자. 


순식간에 하루가 폭풍처럼 지나간 그런 날이었다.



(그림출처:pixb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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