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타노 가는 길, 태양의 도로에서 나눈 이야기

여행이 주는 깨달음

"가이드님, 이탈리아에서 살면 정말 좋으시겠어요. 저도 외국에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와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겠죠? “


"정말요? 에이 근데 솔직히 돈 많으면 제일 살기 좋은 곳은 한국이에요. 모든 일처리 빠르죠. 밤늦게 돌아다녀도 안전하죠. 음식도 맛있죠. 배달도 편리하고 빠르죠. 여기 애들은 참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나쁘게 말하면 게을러요. 속 터지죠.


근데요. 여기 애들한테 정말 배울만한 점이 하나 있어요. 제가 얼마 전에 이탈리아 친구들이랑 같이 맥주를 한잔 하는데 한 친구가 저한테 묻더라고요."


"00아, 넌 꿈이 뭐야?"

"나? 내 꿈?"


"솔직히 제 나이에 누가 꿈을 묻는다는 것도 참 웃기죠.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술 먹으면서, 그것도 남자들끼리 꿈이 뭐냐고 묻진 않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가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길래 제가 대답했어요."


"그냥 우리 애들 건강하게 잘 커서 자기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거. 그런 거지, 뭐. “

"아니 그런 거 말고, 애기들 꿈 말고 네 꿈 말이야. 네가 하고 싶은 거."


"이때 좀 당황했어요. 꿈? 갑자기 내 꿈이 뭐지 싶더라고요."


"내 꿈? 글쎄, 생각해보면 어릴 때도
난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
그냥 적당한 나이에 취업해서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적당한 나이에 애들 낳고
그런대로 살아왔는데..
지금은 나이도 있고,
애들 키우다 보니까...
글쎄, 그냥 이렇게 별일 없이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지 뭐."


"이렇게 대답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게 아니래요. 넌 꿈이 없었던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오히려 꿈이 많은 아이였던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그렇게 대답해주니 약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더라고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거기서 이미 멍했는데 친구가 또 그러더라고요.'


"넌 지금부터 다시 꿈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을 위한 꿈 말고 너의 꿈 말이야."


"이 말을 듣고는 정말 많이 놀랐어요. 지금 내 나이에 꿈을 가지라고 누가 말해주겠어요. 꿈? 무슨 꿈이야. 꿈이 밥 먹여주냐. 하고 있는 일이나 잘하라고 안 하면 다행이죠. 그런데 여긴 그런 마인드가 참 다른 것 같아요. 나이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자극받기도 해요.


가이드하면서 어르신들도 많이 만나는데요. 여기 지나가면서 나이 칠십 넘어서 하얀 셔츠에 단추 네 개 풀고 빨간 바지에 노오란 페라리를 끌고 내리는 할아버지를 보고 어르신들도 모두 하나같이 '와 정말 멋있다'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어르신, 어르신도 저렇게 다니시면 어떨 거 같으세요?' 하면 다들 말하세요. '아이고 미쳤나. 노망 났나.'


분명 방금 본인 입으로 멋있다고 해놓고서 자기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죠.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까요.


한국에서는 사회에서 나이를 정해주잖아요. 나이에 맞는 역할도 정해주고, 뭘 해야 하는지, 뭐가 있어야 하는지까지 정해주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런 걸 따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하하하


이야기가 딴 길로 샜는데 그냥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 본인 나이, 저보다도 훨씬 어리잖아요. 나이는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처음이 어렵죠. 막상 하고 싶은 걸 멋있게 해 나가면 다들 그럴 거예요.


'와 너 정말 멋있다.'


그렇게 본인이 노란 페라리 끄는 할아버지가 돼보는 거죠."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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