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솜사탕 May 01. 2022

19화. MRI와 크리스마스 양말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 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재입원 3일째

-22.04.30.토요일


 오늘 아침도 혹시나 MRI 검사에 끌려갈까 싶어 일찍 일어났지만 아침식사를 다 먹고 나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무래도 토요일이라 검사가 평일로 밀렸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침을 먹고 앉아있는데, 한 간호사가 찾아와 내가 이전에 입원해있던 8층의 뇌졸중 병동으로 옮길 거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쾌적한 레이디 병동이 꽤나 맘에 들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내가 내키지 않아 하자 간호사 분이 8층이 신경과 전문 병동이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거기로 옮겨서 마저 검사하자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여긴 뇌 질환 병동이 아니라서 내가 와 있는 게 좀 이상하긴 했다. 병동 이전은 오후 5시쯤 진행되니 그전까지 짐 정리를 어느 정도 해놓으라 하셨다. 이동이 5시면 그전에 MRI를 찍으려나? (입원 내내 MRI 걱정만 하고 있는 1인)


 소식이 없는 MRI를 기다리다 불안해졌다. 꼭 해야 한다고 하니 소식을 기다리긴 기다리는데 동시에 영영 안 왔으면 했다.(볼빨간 사춘기의 '사라져 아니 사라지지마, 보여줘 아니 보여주지마' 가사 같은 느낌) 나는 심신의 안정을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책을 읽었고 '달러구트 꿈 백화점' 합본의 마지막 챕터만을 남겼을 무렵, 앉은 채로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었다. 꿈속의 나는 아프지 않건강했다. 가족들과 다 같이 색색깔의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시답잖은 걸로 크게 웃어댔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고, 아이스크림은 달았다. 솜사탕맛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먹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다 눈을 떴다. 가족들과 아이스크림은 온데간데없고 나 혼자 병실에 있었다. 삽시간에 상실감과 외로움 휩싸였다가 꿈값으로 이런 걸 내버릴까 걱정이 돼서 급히 좋았던 점들을 생각했다.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지금 못 보고 있는 가족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고 꿈값을 보냈다. (*참조 :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손님들이 꿈을 사 가서 꾸고 나면, 그 직후 느낀 감정들을 꿈값으로 지불하게 된다. 과몰입 INFP라 책 읽는 도중엔 많이 몰입해있는 편...이해바람)


 그러고 핸드폰을 보니 동생으로부터 내일 엄마 대신 자신이 도 되냐는 연락이 와 있었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엄마가 PCR 검사를 하고 보호자로 와주기로 했었다.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 엄마가 보호자로 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오기 어려운 듯했다. 이렇게 보게 될 거라서 꿈에서라도 미리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 꿈 백화점에서 무의식 중에 이 꿈 고른 나 아주 칭찬해.


 극명히 현실과 대비되는 꿈을 꾼 직후라 아쉽긴 했지만, 엄마의 건강이 우선이기에 안 와도 된다고 했다. 엄마도 이 일기를 볼 테니 자세한 건 생략. 남동생이 내일이라도 PCR 검사를 하고 월요일에 오겠다고 했다. 오면 생고생만 할게 뻔해서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 녀석이 오면 재밌긴 할 것 같아서 거절을 못했다.


 그런데 그때 간호사가 찾아와 지금 MRI 검사를 갈 거라고 했다. 5시에 병실을 옮길 거라는 얘기만 듣고 MRI 얘긴 없길래 아무래도 주말이라 더 미뤄졌나 보다 하고 맘 놓고 잤는데..이렇게 갑자기!! 검사 시간이 길 수도 있어 서둘러 화장실에 다녀오니 이미 이송 기사님이 날 기다리고 계셨다. 짐을 모조리 챙겨서 MRI실에 간 뒤, 검사가 끝나면 그대로 8층으로 옮길 거라고 했다. 나는 링거를 끌고 기사님을 따라 지하 1층의 MRI실로 향했다. 자꾸만 손에서 땀이 났다. 방금 자고 일어나서 잠도 안 오고 눕고 싶지도 않을 것 같았다. 지난번 검사 때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검사실에 도착하자 두 명의 담당 선생님이 계셨다. 잔뜩 겁먹은 나는 검사대에 눕기 전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지난번에 했던 그 촬영 구나 싶어서 낙담했다.(투병일기 2화 참조) 그리고 지난번에 장시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어서 그런데 혹시나 도중에 멈추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다.


 MRI는 40분간 하나의 촬영이 아니라 5분, 10분 이런 식으로 여러 개를 이어서 하는 식인데 중간에 멈추게 되면 해당 촬영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5분이면 다시 5분, 10분짜리를 8분까지 하다 멈추면 10분을 다시 찍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조영제가 들어가는 후반부 촬영은 도중에 멈출 경우 오늘은 더 이상 촬영이 어렵고 다시 검사 예약을 잡아서 새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 이 MRI 비용이 한 번에 100만 원이라는 것도 일러주셨다.


 결국 못 견디면 끝이구나 싶은 생각에 내 얼굴은 빠르게 사색이 되었고,  표정을 본 선생님 두 분이 그제야 날 달래며 수습하셨다.


"그래도 본인이 괜찮은 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못 견디면 버튼 꼭 눌러요. 괜찮아요."


(아깐 100만 원 또 들여서 다시 찍어야 한다면서요!ㅠㅠ)


 이미 여기 온 이상 나한테 선택권은 없었고, 양 귀에 귀마개와 패드를 댄 채 머리를 기계 안에 고정시켰다.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저렇게 머리를 하얀 기기 안에 고정하고 들어간다. 출처 : 방배동 참푸른병원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에 패닉이 온 나는 검사 시작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원통의 기기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어지럼증이 와서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두 달 만에 보는 MRI 기계 천장이 뺑뺑 돌아갔다. 어지러워서 눈을 꼭 감고 외부 느낌에 신경 쓰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 뭐라도 떠올리려 애썼다


 좀 전에 읽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꿈이라도 사 오고 싶단 생각이 들고, 조금 전 꿨던 아이스크림 가게 꿈이 떠오르자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꿈속에서는 마냥 행복했었는데 그 꿈과 대비되는 지금 이 상황이 그냥 괜히 다 서럽고, 이렇게 하기 싫은걸 해야만 하는 게 끔찍했다. 근데 MRI 검사 동안에는 몸을 꼼짝 않고 있어야 해서 눈물을 닦을 수가 없다. 이 상황에 주륵주륵 흘렸다가는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눈물 때문에 다시 찍게 될까 봐 눈에 고인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빨리 다른 생각을 하려 애썼다.


 처음 10분은 이렇게 패닉 속에서 보냈는데, 그 뒤로 천천히 눈을 떠서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난번는 복시에다가 눈이 잘 안 보여서 더 갑갑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이제 눈이 잘 보이고 기계와 나와의 정확한 거리감도 알게 되니 전만큼 답답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걸 인식한 나는 이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예전 MRI 때처럼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데 왜인지 예전 박자랑 전혀 달라서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구구단을 외다가 4단쯤에서 멈추고, 검사실 내에 에어컨을 틀었는지 바람이 좀 불어오길래 널찍한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이하며 새하얀 침대에 누워있는 상상을 했다. 이때 훨씬 기분이 나아져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지금 생각하니 미친 사람 같네)

그때 내 상상은 약간 이런 느낌...

 그렇게 잘 참다가 문득 양팔이 저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뇌경색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보다 부쩍 몸이 자주 저리다. 누워있어도 등이 배기고,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쥐가 자주 난다. 찌릿찌릿한 양팔 때문에 정신 집중에 실패한 나는 검사 선생님이 덮어준 수건 밑으로  안 나게 손가락을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밖에서 검사관이 마이크를 통해 12분 남았다고 소리쳤다. (오 생각보다 시간 빨리 갔는데?) 그리고 곧 조영제가 팔에 주입되는 느낌이 났다. 차가우면서도 후끈한 이 아이러니한 느낌.


 나는 다시 '달러구트 꿈 백화점'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한번 이 책과 비슷한 느낌의 'OOOO의 장난감 백화점'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게 떠올랐다. 근데 그 주인장 이름이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 거다!!! 마고..무슨 마 뭐였던  같은데...마드리드..?는 아니고 마고 로비..? 일리가 없고. 마린고트..? 이건 그린고트고. 뭔가 궁금하면 꼭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골똘히 이 생각을 하다 나머지 시간을 다 보냈다.


 생각보다 할 만했다고 담당 선생님한테 허세를 떨며 내려오는데, 선생님이 이전보다 짧아서 그럴 거라고 했다. 지난번 입원 때 한 MRI와는 다른 MRI라고. 지난번엔 50분 이상, 이번엔 40분이 채 안되게 걸렸다는 것이다.(어쩐지 지난번 MRI 박자에 맞춰 만든 노래가 이번엔 안 맞더라니)


 그럼 4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 수많은 생각을 한 거냐고 물으신다면 답은 yes다. 평소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하는 편이다. 심지어 이때 했던 생각들 중 일부만 일기에 쓴 거다.


(아참 내가 말한 영화는 이거였다!! 마고리엄이 어찌나 생각이 안 나던지.)

달러구트 꿈 백화점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무튼 큰 산을 하나 넘은 나는 다시 이송 기사님과 함께 8층 뇌졸중 병동으로 향했다. 81 병동. 내가 이전에 입원했던 바로 그 병동이었다. 그나마 병실은 한 칸 옆이라 방향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거의 똑같아서 그냥 둘러보기만 해도 그때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쏟아져왔다. 레이디 병동에 입원했을 때보다, 이때 더 '내가 결국 다시 병원에 와 버렸구나'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리에 짐을 풀기도 전에 간호사가 찾아와 레이디병동의 분홍색 환자복 말고 이 병동의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링거를 빼주시길래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샤워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81병동의 샤워실은 레이디병동 샤워실에 비해 굉장히 열악하지만, 그래도 좀 깨끗이 씻고 있어야 그나마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샤워실 바닥에 물이 든 건지 망가진 건지 얼룩이 심하게 져있는데 두 달 전에도 '바닥 보수 예정'이라고 써붙여있던 게 여전히 그대로였다.)


 오른팔에 꽂힌 링거에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조심 씻고 나서 수건으로 머리를 말렸다. 옷이 젖지 않게 담요를 두르고 링거 연결을 위해 간호 스테이션에 가는데, 이런 날 보고 맞은편 간병인이 "어머 많이 추운가 봐"라고 하기도 했다.(드라이기가 없어서요ㅠ)


 지난번에 이 병동에 있었어서 그런지, 간호사들이 날 기억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난 기억이 잘 안 난다...그때 너무 정신이 없었다. 링거를 연결해주시는 분이 "앞머리 잘랐네요?"라고 하길래 방금 그냥 씻고 나온 것뿐인데 무슨 소린가 싶어서 순간 "아닌데요...?" 했는데, 생각해보니 지난 입원 때 앞머리가 없었던 것을 얘기하신 거였다. 뒤늦게 황급히 맞다고 정정했다.


 링거를 연결하고 나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다시 뇌졸중 병동에 돌아와 밥을 먹다니...왠지 모를 우울감이 다시 날 찾아왔다. 병동을 한 바퀴 둘러봤지만 나를 제외하고 제일 나이가 적은 사람이 만 58세였다. 아무래도 고령층에 생기는 병이다 보니 80대와 90대 환자가 많은 곳이다. 다른 병동에 비해 굉장히 삭막하고, 도움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서 무조건 간병인을 두기 때문에 4인실이라 하더라도 8명 정도 바글바글 차 있다. 대부분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자리에서 기저귀, 대변기 등으로 대소변을 처리했다. 나는 그 소음과 냄새를 온전히 견디면서, 나의 미래도 결국은 저렇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도 같은 뇌졸중 환자인데 말년에 여기 없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싶어서 말이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서 헤드폰을 끼고 독서용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는 다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기 시작했다. 남은 건 한 챕터뿐이었기에 금방 끝이 났다.

창문에 내가 비치길래 찍어본 사진(feat.마이 프레셔스 김 통)
'달러구트 꿈 백화점' 중 일부

 평소에 나도 정말 드라마틱하게 꿈을 꾸는 편이라 꿈 얘길 소재로 하는 이 책이 정말 흥미로웠다. 현실이 끔찍할수록 판타지에 빠지게 되는 법. 잠시나마 병원 냄새와 소음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 있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정신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이제 기분이 좋아지려면 뭘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신고 있는 크리스마스 양말을 내려다보았다. 일 년 중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계절 중에서는 겨울을 가장 좋아하고, 달 중에서는 12월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TMI : 제일 싫어하는 날은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 같은 허무함이 밀려오는 12월 26일부터 1월 1일까지의 날들)


 딱히 종교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그 설레는 연말 분위기!! 그 분위기가 너무 좋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스스로 만든 미신 아닌 미신처럼, 특별한 날이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늘 크리스마스 양말을 신고 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함께라면 뭐든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막 면접을 본다거나 그런 날에 TPO에 안 맞게 신고 간다는 건 아니고, 오늘 좀 바쁠 것 같은 날이라든지 이렇게 병원에 오게 된다든지 하면 꼭 신고 온다. 지난 입원 생활에도 늘 함께였다.(지난 투병일기를 뒤져보면 어딘가에 크리스마스 양말 모습이 있을 것...이게 바로 이스터 에그?)

패션따윈 신경쓰지 않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양말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양말 노래도 있을 정도다. 양말 신을 때마다 불러서 같이 사는 친구는 이미 이 노래를 외워버렸다. I've got my Christmas Socks!라는 노래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이거 도라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뭐...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꾸밈없는 일기를 쓰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


 나름대로의 크리스마스 양말 선정 기준도 정말 까다롭다. 발목을 모두 가릴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목이 길어야 하고, 또 수면양말처럼 너무 두꺼워도 안된다.(그럼 사계절 내내 못 신잖아) 양말 전체를 뒤덮는 패턴이 지나치게 과해도 안 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중요한 일이 있는 날에는 회사에도 신고 출근하기 때문. 이미 내 회사 동료들은 내가 크리스마스 양말을 신고 출근하면 오늘 중요한 날인가 보네~한다. 위 사진 속 양말이 내 최애 크리스마스 양말은 아니지만...어느 정도 기준을 충족하는 편이라 애용하고 있다. (어제까지는 똑같은 패턴에 색깔만 흰색인 양말을 신고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크리스마스 양말은 총 네 켤레인데, 모두 선물 받은 것이다. 직접 사는 것보다 선물 받았을 때 왠지 효력이 배가 되는 느낌적인 느낌)


 내가 오늘 크리스마스 양말을 신고 있었으니, 이만하면 운이 좋은 날이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시 여기 돌아온 건 슬프지만, 어쩌면 이 양말 덕분에 최악의 상황을 피한 건 아닐까. 검사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좋게 나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사실 그냥 아무거나에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렇게 자 양말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가져온 다른 책들을 읽을까 고민하던 차에 병실의 불이 꺼졌다. 내 자리의 상부등과 독서등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옆 보호자 침대와 내 침대는 정말 커튼 한 장 차이. 내 불빛이 당연히 눈부실 터였다.

내 자리에서 옆자리 보호자 침대가 보일 정도다.

 나는 서둘러 내 자리의 불도 모두 껐다. 저녁 8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하나둘씩 코를 골고 있었다. 불을 모조리 끄고 나자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여전히 듣고 있는 킬링보이스


 조금만 노래를 듣다 자려고 했는데, 오늘 낮에 아이스크림 가게 꿈을 길게 꾼 탓인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자려고 누워도 머릿속에 어제의 기억들을 담은 조각글들만 둥둥 떠다니길래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일기를 썼다. 있었던 일들을 까먹기 전에 온전히 글로 담았다. 다 써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리고 나니 시간이 벌써 오후 11시 반이었다. 병원에 온 이래 이렇게 늦게 잔 적이 없었다. 낼 아침에 피곤해 죽겠구나 싶어서 얼른 태블릿을 끄고 누웠다. 적어도 새벽 5시에는 날 깨울텐데...8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하지 않으면 편두통이 심해지기에 걱정이었다. 병실 내 다른 환자들이 앓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양 귀에 귀마개를 끼고 뒤척였다. 그렇게 재입원 세 번째 날이 마무리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18화. 슬기로운 병원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