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은 사흘의 연휴가 주어졌습니다. 꼬박 이틀을, 아니 그 이전부터 종손 며느리로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명절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제사를 줄이느니 없애느니 말들이 분분하지만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사는 집안이라 명절 준비를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분주합니다. 그동안 생선과 국거리는 직접 준비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연말에 교통사고를 당하시며 장보기까지 전부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30일, 재래시장(나물, 어머님 설빔), 한농연(국거리, 육전), 농협 하나로마트(산적). 탑마트(과일, 전, 김치)를 돌며 장을 보고 김치를 담갔습니다.
31일은 전 부치고, 나물 무치고, 생선 굽고, 그러고 나니 하루가 훌쩍 가버렸습니다.
1일, 남편의 사촌들까지 다 모여 차례를 지냈습니다. 20여 명 식구가 들어서니 집안이 거득했습니다.
이런 제 몫의 명절을 저는 묵묵히 해냅니다. 군말 없이 함께해주는 착한 동서가 있고 조카와 제 아이들도 전 부치기는 일을 맡아서 해 줍니다.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20대가 되었고 아이들의 사정에 따라 때로는 넷, 때로는 셋, 때로는 둘이 되기도 하지만 사정이 있어 일을 돕지 못하면 뒤늦게라도 간식을 사 와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마음을 보태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입니다. 모처럼 사촌들끼리 모여 웃음이 오가고 때로 옥신각신이 오가기도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행복합니다. 음식 준비를 끝내고 사다리타기로 치킨 내기를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큰 금액이 걸린 사람도, 공짜가 걸린 사람도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우리들만의 즐거운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시골이라 선택지가 두 군데밖에 없지만 그때 먹는 치킨은 그 어느 때마다 맛있습니다.
큰딸이 외국에 나가 생활한 지 7년이 지났습니다. 그 아이까지 함께하는, 사촌 다섯의 완전체 명절을 기다립니다.
웃음꼬지
아이들 웃음소리 한 줄에 꿰어서
한가위 차례상에 소복이 쌓아놓고
조상님 흐뭇한 미소 다 같이 음복한다
(명절 풍경을 시에 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이틀, 며느리 노릇 열심히 하고 하루의 여유가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 2시간 30여 분을 달려 합천에 도착했습니다. 작은집에 들러 작은엄마께 세배를 하고 엄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절을 올렸습니다. 셋째 오빠가 투병 중인데 오빠 집에 갔더니 오빠가 소고기를 사놓았습니다. 오빠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 주려던 제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장이 탈이 나서 명절을 병원에서 보낸 둘째 오빠도 퇴원해서 들러 올케언니랑 조카들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합천에 가면 가보고 싶었던 영암사지를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 오도리 이팝나무를 만났습니다. 의도하고 찾아간 곳이 아니라 반가움이 두 배였습니다. 황매산 자락의 영암사지, 오래된 노거수를 만나고 쌍사자석등, 귀부를 만났습니다. 금당터에 서니 그곳의 기운이 온몸에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상쾌하고 맑은 겨울 공기에 기분도 상쾌, 경쾌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제 몫의 명절에 진심이고자 합니다. 세상은 다양하니까요. 시대도 변하고 풍습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겠지요. 저 또한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명절에 담긴 의미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에 마음을 다하고 달콤한 하루의 여유도 사랑할 것입니다.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을 만지면 재수가 좋다고 그곳에서 만난 어떤 분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 쌍사자석등을 어루만지고 그 곁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기운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나눠 드립니다. 올 한 해 재수 좋은 일 많이 생기길 기원합니다. 모두에게 좋은 해, 그런 해가 될 것이라 믿어봅니다.
* 영암사지에서 만난 풍경들입니다~
오도리 이팝나무. 이팝꽃 피는 봄날에 꼭 와 보고 싶은 곳
영암이 저곳을 가리키는지는 잘 모르지만 황매산의 저 바위들이 영암사지를 내려다보고 있다.내 안에 너 있다...ㅎ 쌍사자석등이 삼층석탑을 품고 있다. 오늘 찍은 사진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
삼층석탑
금당터의 호랑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풍경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순한 호랑이가 되었다.
금당터에서 바라 본 풍경귀부
귀부가 있는 풍경
입구의 느티나무
해를 품은 나무삶이 때로 저 해처럼 빛나길, 강렬하길
삶의 어느 순간에도 V를 외칠 수 있게 되기를~
#영암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