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인정을 바라는 자들. 세상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배고픈데 자기 밥을 먼저 내미는 사람.
바쁜데 남의 일을 먼저 챙기는 사람.
힘든데 "나는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이들을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감동스럽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면 슬슬 의문이 생긴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걸까.
타인을 위한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은 많다.
그 중 가장 냉소적인 시각은 이렇다.
결국 모든 이타적 행동은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것은 결국 보답을 기대하기 때문이고,
헌신하는 것은 헌신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원하기 때문이며,
베푸는 것은 베풀었다는 감각이 주는 만족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 시각은 틀리지 않다.
인간의 행동 어딘가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남을 돕는 것이 기분 좋은 이유가 있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없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투자를 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는 사람들도 결국 무언가를 바라는 걸까.
헌신의 이면에 계산이 있는 걸까.
나는 한동안 이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만 그것이 내가 예상했던 종류의 것이 아니다.
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지위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명시적인 보답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훨씬 더 내면적인 무언가다. 헌신하는 자기 자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있는 자기 자신. 주변이 괜찮아지는 것을 보는 자기 자신.
그게 그들의 투자다.
그리고 그 투자의 수익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회수된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상하다.
그 수익을 위해 자기 자신을 소모하는 것을 그들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잠을 줄이고, 돈을 쓰고, 체력을 갈아 넣고, 자신의 감정은 뒤로 미루면서, 타인의 안녕을 먼저 챙긴다.
그러면서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소진되어 가면서도 그게 맞는 것처럼 산다.
자신이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이 지점에서 나는 멈칫하게 된다.
자신이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 그게 정말일까.
자기 파괴적인 헌신이 진짜 의지인 걸까, 아니면 자신을 돌보는 법을 몰라서인 걸까.
혹은 자기 자신보다 타인에게 집중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회피인 걸까.
이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을 작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헌신 뒤에 불안이나 회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헌신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헌신이 진짜이면서도, 그 안에 자기 자신을 향한 무언가가 얽혀 있을 수 있다.
인간의 동기는 원래 그렇게 단층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들 앞에서 묘한 감각을 느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같은 인간인데 다른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랄까.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는데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존재를 보는 것 같은.
나는 배고프면 먼저 먹고 싶고,
피곤하면 먼저 쉬고 싶고,
손해가 보이면 피하고 싶다.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게 생존이고, 그게 자연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다.
그런데 그 본능이 희미하게,
혹은 거의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수양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경험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을 보고 있으면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생명체를 보는 것 같다는 감각이 든다.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다른 생명체라는 말은,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나의 언어와 논리와 계산으로는 닿지 않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타인을 위해 자신을 쓰는 것이 소모가 아니라 충전처럼 느껴지는 사람들.
자기 자신이 조금 닳아도 누군가가 나아졌다는 것이 진짜 수익인 사람들.
이것을 어리석다고 말하기에는 그 삶이 너무 단단하고,
불행하다고 말하기에는 그 얼굴이 너무 고요하다.
나는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낮게 보는 것과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세계가 내 논리보다 넓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라는 것이 결국 헌신하는 자기 자신이라 해도,
그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온 힘을 쏟는다는 것은 여전히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다.
그들은 다른 생명체다. 그리고 그 다름이, 세상을 조금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