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살 유가족의 고백

매년 8만 명 발생하는 '자살 유가족'을 아시나요?

by Light Life


영화 <좀비딸>로 돌아온 배우 윤경호가 유퀴즈에 출연했어요. 유쾌한 경험담을 맛깔나게 쏟아내며 에피소드 부자로 등극했죠! 그런 그가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땐 시작부터 눈물을 멈추지 못했어요. 어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1호 팬을 자처했던 어머니는 서른일곱이 되던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요. 윤경호는 자신이 ‘자살 유가족’ 임을 대중 매체에서 처음으로 고백한 거예요.


tempImageMY1HY1.heic 배우 윤경호는 어머니를 자살로 잃은 경험을 고백했어요 (출처: 유퀴즈, tvN)


그는 ‘그때 당시 사춘기 때문에 점점 나만 기다리는 엄마가 순간 귀찮았다’라고 이야기하며, 이제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우울증이 심하셨던 것 같다고 추측했어요. 자신이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다는 말에는 자책과 슬픔이 진하게 묻어있었고요.


tempImagegEqxQp.heic 당시, 우울증 치료는 커녕 진단도 쉽지 않았습니다...(출처: 유퀴즈, tvN)


| 어디서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이야기 |


자살 사망자 1명 당 평균 5~10명의 자살 유가족이 발생한다고 해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 자살 사망자 수는 13,978명, 그 주변 자살 유가족은 8만 명 내외로 추정되고요. 이들은 고인을 잃은 슬픔, 미리 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 사회적 경제적 고통을 안겼다는 원망, 주변 사람을 돕지 못했다는 무력감 등 여러 어려움을 흔히 겪는데요. 일반인보다 우울증 발병률은 7배, 자살 위험은 8.3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자살 유가족임을 숨기고, 속으로 삭이느라 그 기회를 많이 놓쳤어요.

tempImageRwxA7T.heic 할머니가 손주인 윤경호에게 할 수밖에 없었던 말 (출처: 유퀴즈, tvN)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사람들이 너를 흉볼 수도 있다. 차라리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해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손주인 윤경호에게 전한 말이에요. 우울증을 진단받기도 어려웠던 시절, 자살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가족의 허물이 되고, 상실의 아픔을 숨겨야 하는 이유가 되었던 거죠. 그러다 보면, 주제를 피하려고 가족 간 대화가 줄고, 서로를 비난하고, 외부와의 교류를 피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 용기를 내어 추억하는 어머니 |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세바시 강연에서 비슷한 고백을 꺼낸 적이 있어요.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아들인 본인을 붙잡고 여러 번 ‘같이 죽자’라고 말했던 기억이에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망 원인은 간경화였지만,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본인도 자살을 3번이나 시도했어요. 강연하는 동안 차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훔치면서도, 경험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요. 왜냐하면 스스로 이건 부끄러울 일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이 용기가 다른 사람들 마음에 닿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tempImage9mfBm2.heic 뇌과학자, 장동선의 고백 (출처: 유튜브 '세바시' 채널)


윤경호 배우에게도 어머니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꺼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 같아요. 좋은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어머니가 생각났지만, 그 시절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이 든 아들은 속으로 질문만 수없이 던지며 긴 세월이 지났어요. 그럼에도 유퀴즈 출연을 통해 그가 자살 유가족임을 고백한 건, 더 자유롭게 어머니를 추억하기 위해서라고 감히 추측해 보아요. 가까웠던 사람이 인생의 금기어가 되어버리면, 기억과 정체성에 큰 공백이 생기고, 복잡한 감정은 갈 곳을 잃어버리니까요.


| 솔직할 용기를 내고, 그 용기를 응원하는 사회 |



2011년쯤부터 공황장애 진단율이 급격히 증가했어요. 2004~2010년 사이 연평균 진단율이 10만 명당 65명 수준이었다면, 이후엔 꾸준히 증가해 2021년 10만 명당 610명을 기록했어요. 그 이유로 정신과 전문의들이 꼽는 건 유명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투병 사실이에요. 김구라, 이경규, 차태현 등 인지도가 높은 인물의 이어진 투병 고백 덕분에 인식이 개선되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게 된 거죠. 자살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 역시 윤경호 배우처럼 누군가 용기 내어 나눈다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조금은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 같아요.

tempImagetU1nnm.heic 구조 신호를 보내고 받을 줄 아는 사회 (출처: 유튜브 '세바시' 채널)


장동선 박사가 개인적인 아픔을 고백하면서, 강연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명확해요. 서로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받는 것의 중요성이에요. 구해주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아직 사회가 구조 신호를 보낼 줄도 읽을 줄도 몰라서 문제가 점점 커진다고요! 자살 유가족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낙인은 결국 무지에서 오는 거예요. 먼저 용기를 내고 경험을 공유한 자살 유가족 덕분에 앞으론 더 작은 용기로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점점 쉬워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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