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과 이자율
1. 환율
저는 거시경제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노동쪽 보다는 금융쪽에 치우친 공부를 해서 중요한 경제지표 두 개를 꼽으라면 이자율과 환율을 꼽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자율이 대내적인 경제 상황을 보여준다면, 환율은 대외적인 경제 상황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노동쪽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아마 인플레이션과 실업율 같은 지표들을 선택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실 경제학자들끼리도 이야기가 안 통할 때가 많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니깐요.
환율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는데, 크게 보면 금융쪽 측면에서 접근한 것과 무역쪽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있습니다. 비관적으로 말하면 이런 이론 중에 현실의 환율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없는데, 낙관적으로 보면 모든 이론들이 조금씩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설이 다른 설보다 월등하게 설명력이 높지는 않다 라고 이야기 할 순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학교에서는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하는데 유리하고, 환율이 내려가면 수입하는데 유리하다고 가르치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협상력이 높은 쪽이 환율 상승 및 하락으로 인한 이익까지 고려해서 가격을 결정하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한동안 품귀 현상을 겪었던 마스크를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제가 듣기로 그 때 당시에 전세계에서 하루에 만들어지는 마스크가 4천만장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4분의 1인 천만장을 우리나라가 생산하고 있는데, 그걸 수출을 못하게 막아버리니 미국에서는 마스크 한 장에 몇 만원하는 경우도 생겨났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마스크 제조업자가 협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율 때문에 수출이 늘고 줄고 하는 그런 영향은 적죠.
이렇게 개별적인 재화의 경우에는 많은 경우에 협상력에 따라 좌우되지만, 이걸 다 합해서 분석을 하면 환율이 높은 경우에는 수출하는 것에 유리하고 환율이 낮은 경우에는 수입하는 것이 유리한, 그러한 큰 틀에서의 움직임이 관찰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경제학에 대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이 점인 것 같아요. 경제학은 최대한 단순한 이론으로 사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려고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단순한 이론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을 가지고 경제학이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학문이라고들 하죠.
2. 외환보유고
고등학교 때 사회 관련 과목을 하나라도 들었다면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 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겁니다. 자원도 부족하고, 그래서 결국 인적 자원을 이용해서 재료 사다가 조립해서 완제품 만들어서 판다구요. 요즘같이 복잡한 시대에 이렇게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우리나라는 많이 사오고 많이 파는 나라입니다. 그러다보니 환율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따라서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는 것이 기업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죠.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우리나라는 외환보유고가 꽤 된다고 거짓말을 했죠. 후에 실사결과,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시중은행에 있던 모든 달러를 끌어모아도 그 수준이 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환율은 치솟았고 기업은 부도나고 팔리고.
그렇게 금 모으고 빌린 돈 다 갚고, 그 이후로 꾸준히 외환보유고를 늘려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말 국제금융위기가 발생하게 되고, 이 때 외환보유고를 적극 이용해서 환율을 방어하게 됩니다. 그래서 외환보유고가 좀 줄었는데, 그 이후에 다시 외환보유고를 쭉 늘리면서 지금의 상태가 된겁니다. 외환보유고 사이즈만 따지면 외환위기 이후로 꾸준히 전세계 Top 10 안에 들죠.
그리고 2008년 9월 달에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들게 되면서 그 유명한 KIKO 사태가 발발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2007년에 이 상품이 많이 팔렸는데, 환율이 크게 변동하지 않으면 이 상품을 산 사람들이 이득을 보고, 환율이 크게 변동하는 경우 이 상품을 판 사람들이 그에 몇 배 되는 이득을 보는 상품이었죠. 2008년 상반기만 해도 중소기업들이 이 상품을 통해서 적정한 이윤을 보고 있었는데, 이 이후에 견실한 중소기업들도 이 키코 때문에 망하게 되죠. 어떤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이라 수출 주도 성장을 위해 환율을 올리는 정책을 취했다가 오히려 중소기업들을 말아먹었다고 표현했는데, 결과만 보면 맞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환율을 올렸다기 보다는 상황상 환율이 올랐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한 설명이죠.
암튼, 이 외환보유고는 일종의 외화 표시 예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금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찾아쓰면 되는 거죠. 문제는 필요한 때 찾아 쓰려고 하면 애매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외환보유고를 늘릴수록 경제 내에서 사용 가능한 자원을 줄이는 꼴이죠. 그러다 보니 그냥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보다는 그래도 이자라도 주는 외화표시채권을 외환보유고로 보유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외화가 필요해서 외환보유고를 헐려고 하면, 일단 외화표시채권을 팔아서 현금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보니, 외화표시채권시장에서의 채권공급이 증가하게 되고, 결국 해당 채권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위기가 더 심각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 외환보유고를 줄여서 환율을 방어하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게 됩니다. 이게 Liquidity Trap 즉, 유동성 함정이라고 불리는 현상이지요.
그래서 외환보유고가 위기 상황에서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실상을 뜯어보니 위기 상황에서의 안전판 역할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그나마 평상시에 국가의 신용등급을 높이는 데 좀 기여를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 국가신용등급이 올랐다고 자축했던 걸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것과 연관시켜서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그래서 결국은 또 통화 스와프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명목상으로 재화나 서비스의 이동 없이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깐요.
3. 달러는 기축통화
달러는 기축통화입니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많이 거래가 되어야 합니다. 거래가 된다는 것은 달러라는 종이 조각을 이용해서 미국 외의 나라에서 가치가 있는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뜻이고,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이 종이 조각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적자는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트럼프는 적자를 안 볼거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뭐 그동안 워낙 적자 규모가 컸으니 그 규모가 줄어들 수는 있어도 적자가 흑자로 바뀌기는 구조적으로 힘들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종이 조각 뿐만 아니라 다른 종이 조각, 즉 미국 국채도 해외에서 엄청나게 거래가 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40% 이상이 미국 외의 지역에서 거래가 되고 있었고, 그 중에 많은 부분을 중국이 자국의 외환보유고의 형태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경기가 좀 안 좋았을 때, 중국이 외환보유고를 풀겠다고 겁박한 적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대로, 외환보유고를 헐면, 채권시장에서의 공급이 증가하고, 채권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어, 이자율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자율을 최대한 낮춰서 경기를 부양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태도가 성가실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뭐, 결국 중국이 좀 팔았더니 그걸 일본이 줍줍해서 중국의 시도는 얼마 안가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요.
이러다보니 보통 다른 나라들은 금리를 내리면 자금이 빠져나가는데, 미국은 역설적으로 국부의 유출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을 Big Closed Economy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효과를 고려하지 않던데, 채권은 이자를 줘야 되는데, 이자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줘야 되는 이자가 줄어드는 거죠. 만약 이자가 줄어서 미국 국채 외의 다른 자산으로 대체하려는 유인이 생기면 이런 효과도 반감될텐데, 현실적으로 미국 국채의 대체제가 제한되는 만큼 반감되기 힘든 게 현실이죠. 이래저래 국가는 힘이 세고 경제 규모는 크고 봐야 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