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구경기장
축구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앞자리에도 사람들이 듬성 듬성 앉아 있었습니다. 점점 경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앞자리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도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그 때 비어 있던 앞자리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묻습니다. 자리가 있나요? 자리를 맡고 있던 사람이 있다고 하니 실망하고 뒤로 갑니다. 그리고 이내 전화를 걸기 시작하고 곧 이어 일행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빈자리를 차지합니다.
맞은 편을 바라보니 유리 부스로 둘러 쌓인 VIP 석이 보입니다. 그리고 앞에 자리를 맡은 사람이 필요한 것보다 좀 더 많이 맡은 모양입니다. 자리를 못찾은 커플에게 와서 앉으라고 하고, 커플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쿠키를 건냅니다.
2. 부동산시장
한국전쟁 이후 Baby boom 세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했습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 같은 땅따먹기에 비견될 수준은 아니었지만, 서로 비슷한 처지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사는 게 임자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등기 제도도 제대로 유지되지 않던 시기가 있었지요.
시간이 흘러 짧은 시간 안에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고도의 성장을 이루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은 점점 더 커져갔고, 지금은 굉장히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먼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은, 먼저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부가 증식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울의 외곽에 자리를 잡았던 사람들은 서울이 더욱 커지면서 자기보다 더 외곽에 사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고, 어느새 중심에 사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집을 여유로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팔거나 빌려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집들을 비싸게 팔거나 빌려주게 됩니다. 즉, 만원 주고 산 입장권을 10만원에 팔거나 5만원에 앉을 권리를 주는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맡은 자리를 나중에 자식에게 주는 것이 자식들이 중심에서 살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을요.
3. 부동산 시장에 대한 세대별 관점
경기장에 먼저 들어갈 수 있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그냥 살던 곳에 살고 있었는데 내가 자리세를 왜 내야 되냐는 겁니다. 먼저 태어나서 집을 산 게 죄냐는 관점이지요. 그리고 처음에 그 자리에 앉을 때는 그런 말도 없었으니깐요.
반면에 이제 경기장에 들어온 우리 세대들은 이미 꽉 들어찬 자리를 보면서, “야... 경기장이 이렇게 넓은 데 내가 앉을 자리 하나가 없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자기 뒤로 입장한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누군가가 맡아놓은 앞자리로 가서 앉는 것을 본다면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냐.” 라는 분노와 좌절감 등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이게 기본적으로 제가 부동산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점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저 임차인과 임대인, 세입자와 집주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전후 70여년 간의 걸친 기간 안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그동안 고려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진 상황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고도의 성장을 이룬 나라도 적지만, 비슷한 성장을 이룬 나라들로 확대해보면 성장 당시에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부가 이후 세대에 이전되는 현상이 자주 관찰됩니다. 즉, 부를 창출하는 능력이 뛰어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혹은 같은 능력이어도 소비보다 저축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좀 더 부유한 상태에서 경제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거죠.
앞으로 제대로 된 원칙을 세우지 않고 나아간다면 앞으로 이 문제는 더 복잡하게 될 겁니다. 지금 하는 것처럼 경기장에 들어오는 사람을 줄이면 된다는 식으로 입장권을 사는 사람에게 세금을 걷고, 입장권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걷고, 입장권을 팔 때 세금을 걷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리고 우리 경기장에 다른 나라 경기장 운영 방식을 이식하는 형태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부동산 제도가 있듯이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만이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정의라는 것도 있을테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