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by 명규원


나치의 악독함이 극명하게 드러난 아우슈비츠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기록한 한나 아렌트의 책에서

‘악의 평범성’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42년부터 실무 총책임자로 활동한 아이히만은 종전 후 중동을 전전하다가 1958년

아르헨티나로 숨어들었지만 1960년 체포돼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검찰에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말하는데 무능력함은 …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치가 썼던 상투어로 말했고 다른 표현을 할 줄 몰랐다.

‘유대인 학살 당시 사용한 첫 번째 해결책’(추방), ‘두 번째 해결책’(수용), ‘최종 해결책’(학살)

이란 말로 현실을 호도했던 대로다. 여성 정치 철학자로서 아렌트는 이 대목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기가 하는 일과 현실에 대해 눈 감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상투어다. 과연 그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말인가?

오늘날 ‘악의 평범성’은 너무 자주 언급되지만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의 내면에 아이히만과 같은 악마적 본성이 있다’는 개념을 떠올린다.

그러나 아렌트가 정의한 것은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기를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는 상황에 초점이 있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히틀러를 숭배하고 맹목적 충성심으로 뭉쳐진 사람이었다. 또한 타인에 대해

공감하거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의 죄는 생각하는 존재로서 책임을 지지 않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면서도

거악을 저지른 것이다. 집단의식에 매몰되어 개체로서 자기를 반성하거나 책임을 의식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죄다.

개인이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면

지배 집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제아무리 판사라도 마찬가지다. 특정 집단의

이념과 이해를 위해 사법 농단으로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일들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절차상 위법이 있는지 합법성을 심판하는 기관인 법원이 형평성과 정당성을 잃고 있으니 정말 문재다.

.

괴물과 같은 존재로 몰아가 유대인의 분노를 충족시킬 의도를 지닌 검사들과 달리 그의 모습에서

‘악의 평범성'을 잘 볼 수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동족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예루살렘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사실을 직시하고자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선과 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려 하는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한다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상력의 결핍과 판단의 실패는 맹목적인 존재로 누구라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게 한다는

통찰이다. 악은 특이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흔한 방식으로 자리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이나 관심사에 편승하지 않고 사심 없이 진실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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