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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Mar 27. 2023

영원하지 않기에


봄, 생명이 움트고 꽃이 한없이 피어난다. 희망차고 새로운 날들이 기대되지만 그 이면에 이별과 슬픔이 

있다. 낡아진 것들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지난겨울 단풍나무에 매달려 있던 시든 잎들이 새싹이 

돋아나자 떨어져 나가고 있다. 새로움이 없다면 낡아짐도 없고 이별이 없다면 만남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봄에 상실과 이별의 정서에 젖어든 것은 낯선 경험이다. 내 곁에서 주는 기쁨이 컸던 존재인 만큼 상실감이 

크다. 이제 둥지에 남아있던 어린 새 마저 날아가버리고 빈 둥지만 남았다. 대학 진학을 위해 멀리 간 늦둥이 아들과 작별하고 한동안 마음이 무너졌다. 직접 겪어봐야 고통과 슬픔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서의 첫 말은 언뜻 이해가 안 간다.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있는 걸까?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이미 과거에 있던 것들이라니 우리가 뭔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삶이 허무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세상이 유한하다는 인식은 영원히 존재하는 신에 대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생명의 

연수가 얼마 되지 않으니 하루하루 수고하고 그 보람으로 먹고 마시는 생명활동에서 즐거움을 누리라고 한다.

전도서는 근본적으로 유한한 인간에 대한 자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어떤 훌륭한 업적을 쌓더라도 우리가 

별것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판데믹 공포처럼 이 세상의 일들은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인생을 마음껏 누린 자나 고통스럽게 일한 자나 생명을 붙잡을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간이란 존재는 먼지와 같고 태어나서 살다가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 시작과 끝에서 우라가 소유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 혼자보다는 등을 맞대면 따뜻해질 두 사람이 낫다. 삶이 

영원하지 않기에 적당한 때에 통과의례를 거치듯이 결혼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 삶이 순간순간 이어지고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우리는 순간을 충실하게 살 수 있다.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기도 하는 삶에서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고 아끼고 기억할 것들은 간직하면서 살아나가야겠다.

인간의 고통이나 슬픔, 마음을 휘젓는 문제들과 삶의 유혹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행복과 성공을 약속하고 생명을 보증해 주는 것이  세상에 있을까? 인간 존재가 시간성과 한계를 지녔다면 '헛되다'는 통찰은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에 얽매여 살지 말라는 경구로 보인다. 자신의 근원인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면 인생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일 뿐이다. 오늘도 즐거움과 기쁨을 조금이라도 느끼며 살 수는 것은 내 생명과 삶을 허락한 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고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신을 원망할 수 없다. 우리를 사랑한다고 믿는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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