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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pr 05. 2023

몰입과 행복

산들바람이 부는 해변의 휴양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또는 가족들과 모래사장을 천천히 걷는다.

노을을 바라보며 편안히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는 여유로운 시간···!

 ‘행복’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비슷하게 풍족하고 하염없이 빈둥거리는 모습을 떠올려 볼 것이다.

사람이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미국 시카고대학 심리학 교수 미하이 착센트미하이가 파고든 질문과 실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쾌락의 탐닉에 있지 않다고 한다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서 자유롭게 사용될 때”, 사람들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거나 흐르는

물에 온몸을 내맡기고 자유롭게 떠내려가는 것을 연상시키는 의식의 최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

자질구레한 고민 따위가 없고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리는 완벽한 집중, 그것이 바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던 시절이 지나면 '몰입‘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장거리 달리기 같은 운동을 통해서 몸의

한계를 극복하다 보면 러너스 하이'의 독특하고 강력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때나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도 자신을 잊는 몰아지경(沒我之境)에 이를 수 있다. 자연은 작은 것으로도 충만한 기쁨의

순간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감이 살아있어야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감각이 무디어지고

감정이 메마르면 제대로 듣고 느끼고 맛볼 수 없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고 익숙한 것에만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 상태여야 가능하다.

몰입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기술을 요구하는 도전적 활동‘이다. 수행해야 할 과제가

너무 어려우면 도전의식이 꺾이면서 좌절감에 빠질 수 있기에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 과제가 너무 쉬우면

몰입은 일어나지도 않고, 어렵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고 해결할 수 있겠다 싶은 무언가에 도전할 때

우리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정상에 오른 클래식 음악가들이나 발레리나, 운동선수들 모두 수없이 반복

하고 고된 연습과정을 거친 후 몰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취감과 성장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열정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면 작업 활동과 일이 지긋지긋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큰 행복감을 준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강제수용소의 아침은 눈을 뜨자 먼저 기온을 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하 40도 이하면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작업을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세월 동안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 벽돌을 쌓을 때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기껏해야 죽을 한 그릇

더 먹고 원하던 줄칼 조각도도 얻고 선심도 쓴 하루였을 뿐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이 그림을 그린 원계홍 작가도 세상이 전혀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았다. 타인의 평가보다 스스로 세운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면서 자신의 작업에 진심을 다하고  사랑했다.

한 차례 개인전을 열고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예술가의 세계를 더 펼쳐 보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거의

잊혔다가 재조명받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애호가들 덕분에 탄생 100주년 전시회를

지금 성곡마술관에서 하고 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본 순수한 표현과 색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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