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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Jun 16. 2023

의식의 흐름, 현대 회화의 흐름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윌리엄 제임스

최근 사물의 표면에 천착하는 감각적인 전시회를 몇 번 가게 되었다. 미대 동기이고 교수인 작가의

의욕적인 작업이 호응을 얻는지 활발하게 전시회가 열렸다. 이국적 취향을 자극하고 에로틱한 기호

(동성애 포함)를 가볍게 드러낸 그림들이다. 일상과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건전하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대중의 낭만적 정서를 자극하는 키치로 보였다. 회화에 새로운 친화력을 갖게 하는

전시회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과 사태의 심각성을 흐리게 하는 것 같았다.

복잡한 미학적 사회학적 의미를 갖다 붙여도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대상으로 상품화하고 물질적

견지에서 이해하려 드는 게 아닌가 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의 지평과 가치를 해체시키고 우리가 거리를 두고 관조할 수 있는 동질의

고정된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고 본다. 진실도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미결의 진실 속에 허우적거리며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적 대상을

재현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의 모습과 사물, 자연에서 얻은 ‘순수 경험과 아름다움을 토대로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윌리엄 제임스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일차적 재료, 모든 것을 구성하는 재료라고 설명한 것이다.

구상적 시각이 현대 회화의 흐름과 거리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나의 고유한 경험과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려 한다. 앞으로 작업을 계속해나가면 자연스럽게

변하리라 기대하지만 아직은 상상력의

부족으로 소위 내재적 진실을 추상화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관심사, 환영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조형의

세계로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연과 사물에서 느끼는 풍요로움을 추상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꺼?


이 책은 1907년에 쓰였고 한 편의 논문에 가깝다. '근본적 경험론'이 일반적 경험론과 구별되는

점은 사물들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의식과 의식의 대상으로 분열되지 않은 '순수 경험'이

순간적인 현재의 장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제임스는 세상에 단 하나의 일차적 재료, 물질이 있다는

가정하에 인식하는 자와 인식 대상은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관계 속에 있다고 본다. 경험된 모든

것은 어떤 점에서 실재적이며 실재적인 모든 것은 경험된다는 점에서 그는 변화의 경험을 관계로 논한다.

심리학에서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사고와 사물은 본질적인 동질성을

향해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의식은 어떤 존재가 아니라 기능이다. 사물이 단순히 존재할

뿐 아니라 알려지고 인식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의식은 어떤 '경험' 속에서 내용에

대하여 논리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사실이 밝혀진다는 것 그리고 내용에 대한 인지(awareness of content)가 일어난다는 데 독특성이 있다.


그런데 불가해한 의식적 경험의 공통점은 내용이라 부르는 것이 '자아'라는 중심을 고유하게 참조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주어지거나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의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소설의 기법으로 만들었다. 사실주의 문학에 반기를 들고 진정한 리얼리티는 내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삶이 경험되는 순간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는 기법으로 한 평범한 날에 일어난 사건과 주인공은 물론

여러 인물들의 마음속을 들락 거라면서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의식을 표현한 작품이 <델러웨이 부인>

이다.

제임스에 따르면 내가 생각하는 사물은 오래전 유년기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어떤 실재성과 더불어

영향을 미치고 나를 결정한다. 이와 같이 대상을 접하면서 지각적인 경험과 비지각적인 경험이 두 번

헤아려지는 경향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잘 구현된 것 같다. 대상에 대한 '사고'와

사고된 '대상', 두 가지가 역설이나 신비 없이 하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나누기 어려운 '경험의 중첩'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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