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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Jul 27. 2023

슬픔을 넘어선 참혹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


‘어머니와 나, 우리는 서로 실제적인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고 언제나 일체감 속에서 살았는데…’

아름답고 생기가 넘치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고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다. 몸은 왜소해지고

얼굴은 일그러져 간다.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빛을 잃어버린 눈망울은 늘 무언가를 망연히 바라보며 가까운 사람도 못 알아본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치매환자인 어머니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지금 내 곁에 살아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하면서 깊은 애정을 보인다. 물론 생을 이렇게 끝맺음한다고 생각하니 통렬한 고통이 밀려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어머나는 ‘나’이면서 ‘그녀’였다. 그러나 더 이상 어머니 자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보살피다가

기분이 언짢아진다. 때론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치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인격과 수치심을 방기한 어머니에게서 슬픔을 넘어서 참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고통을 자신이 분담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정도 일기에 솔직하고

절절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하여 진술함으로써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고갈시켜버리고자 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 어린 시절엔 그토록이나 어머니를 사랑했건만….'


얼마나 모녀사이가 친밀했던지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랄 정도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아래서 위로 올라가기 어렵다. 나 역시 어머니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도리와 사랑에도 불구하고

치매는 곁에서 돌보기 힘들고 요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소원도 들어줄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다’는 어머니가 마자막으로 쓴 문장이다. 작가는 평소애 남애개 주가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뚯을 살려 책 재목으로 삼았다.

살아있다는 것은 손길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접촉한다는 것,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고통스럽다. 그리고 죽음이란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해서 ‘목소리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작가의 말이 와닿는다. 꿈속에서도 돌아가신 분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어머니가 죽고 모든 것이 멈춰버리고 무의미해진 작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자신을 추스르게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어머니는 마음속에  살아있다. 생기 넘치고 아름다우며 열정으로 가득 찬 모습!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여자로 기억될까?

나는 나의 어머니와 딸들에게 얼마큼 일체감을 주었을까?

세상에서 이렇듯 친밀하고 진지한 관계를 누구와 맺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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