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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ug 08. 2023

절실하게 희망해 온 것?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지독한 더위가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육체적 고통이든 마음의 고통이든 

누구나 예외 없이 일상적이다. 피할 수 없다면 견딜 수는 있어도, 즐길 수 있을까? 떠나기보다 

머물기, 경험을 쌓기보다 생각하기가 이제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환멸이 가득 찬 세상에서 언어는 단지 소리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도 있다. 싦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원칙과 가치가 무너지고 있으니 분노가 뒤엉켜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소리와 분노'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 5막 5장에서 따왔다.

아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맥베스가 남긴 유명한 독백이다.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지." 


달라지고 있지만 변하는 것이 없다. 생활이 좀 더 편리해지고 빨라진 것은  있지만 세상의 악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도덕성과 가치를 지니기 위해 한 개인으로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희망도 인류의 진보도 없다. 내가 아닌 타인의 기쁨과 슬픔, 고통을 

공감할 수 있어야 세상의 짐승스러움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영문학사에서 주목할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는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등과 함께 '로스트제너레이션'을 

대표할 뿐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서구 모더니즘을 문학을 

이끈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미국 남부의 역사와 전통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소설에 1900년대 

미국 남부지역의 사회상-보수적 성향과 인종차별-과 백인 가정의 몰락을 그려냈다. 콤슨가 4남매 중 

3형제와 이들을 키우며 살림을 맡은 흑인 하녀 딜지가 화자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연속성이나 

통일성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주요 사건에 대한 기억을 단편적으로 재구성했다. 다소 난해한 

작품이다. 

한때 지역에 세력을 미치다가 기울어진 콤슨가에 백치로 태어난 벤지의 이야기로 소설이

시작된다. 자폐적 세계에 살면서 괴성을 지르고 동물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벤지는 3살 

수준의 정신지체아지만 엄청난 덩치를 지녔다. 오직 다정하게 대해주는 누이인 캐디만이 

컨트롤할 수 있다. 벤지는 습관적인 질서를 추구하며 보이는 것, 들리는 것만 표현한다. 

콤슨은 무능력하고 냉소와 허무, 패배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술에 의지해 산다.

부인 캐롤라인은 남편보다 잘난 가문이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까다롭고 예민한 데다 불평불만 

속에 살아간다. 부부로서 애정이나 정서적 교감이 없으니 자녀들도 사랑과 이해, 배려가 

부족해서 불행을 겪고 가정은 파국을 맞게 된다. 

큰아들 퀜틴은 선의와 강한 자의식을 지녔고 아버지의 기대와 강력한 후원으로 하버드에 진학한다.

하지만 집안의 명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책임감) 때문에 찰스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여동생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캐디는 성적 문란으로 사생아를 낳고 엉뚱한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당한 것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무너진 콤슨도 따라서 자살한다. 오빠와 같은 이름의 딸 퀜틴도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삼촌 제이슨을 속이고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자살한다. 결국 모두 망가진 

인생으로 끝난다. 

한 가정이 와해된 것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정치적으로 유력한 인사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기의 과오를 덮어버리기 위한 극단적 선택(? 타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은 

무책임하고 비열한 짓이다. 약자와 정의 편에 서있다는 프레임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다 보니 

거기에 갇혀서 출구를 못 찾는 것이다. 진보진영과 소위 개념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권력을 이용해 

성추행한 사실도 밝혀졌다.

생의 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보다 

한 개인으로서 더 나은 삶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거짓과 위선을

벗어나야겠다. 인간은 항상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법도 배워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악함을 자제해 주는 내면적 요소로 말한

 '공감'과 '양심'이 정말 중요하다.


산다는 것은 미래를 지향하는 행위이고 꿈을 가지고 자신을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에서 산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으로 존재하고자 하는가를 끊임없이 결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삶은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의 합계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절실하게 희망해왔는가의 합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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