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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ug 04. 2023

완벽한 사랑

<엘리제의 사랑>,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문학은 현실을 넘어설 수 없고 현실은 늘 문학보다 광대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이 한 말은 그동안 소설이 잘 읽히지 않은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평소와 달리 여름엔 소설을 찾는다. 더위를 잊는데 소설을 읽는 것만큼 유용한 방법이 없다. 도서관에 가면

시원하고 책을 펼치면 바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만든다.


단편집 '검은 기쁨'의 마지막에 실린 <엘리제의 사랑>은 동기성이 소멸된 사랑의 우화다. 최고 권력자가

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온 앙리와 카트린은 연극 무대 위의 배우처럼 행동하지만 애정이

식은 지 오래되었다. 무엇보다 여론을 두려워하기에 틀에 갇힌 권력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특히 엘리제 궁에 고립된 채 버려진 기분을 느끼는 카트린은 앙리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고 시간의

괴리를 겪는다.

사실 결혼 생활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과 상대방을 용인하는 태도가 없으면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사랑도 없다. 사랑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로

부딪히게 되는 결혼 후 삶이란 너무나 다른 사람끼리 맞추어 살아야 하므로 어려운 기복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카트린은 앙리를 진지하게 사랑했고 치열하게 증오했다. 남편의 부정한 행동과 모든 것을 다 아는 그녀는

서로 친밀한 관계에서 멀어진 앙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결함을 없애버리고 그를 포용한다.

부인의 입을 막기 위해 사고로 위장해 죽일 음모를 꾸민 덕분에 병원에서 암이 발견된 카트린은 임박한

죽음 앞에서 전혀 반대로 행동한다. 다시 사랑이 그녀를 지배한 것이다. 초인적인 사랑으로 버티며 책을

쓰고 남편을 재선 시키는 것을 목표로 죽음에 저항하다가 다 이룬 후 떠날 수 있었다. 앙리는 카트린이 글을

남겼다는 것에 분노하며 자신을 망칠 책의 출판을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사랑했던 남자’

라는 아름다운 제목으로 사랑을 증언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마지막 문장까지 쉬지 않고 읽은 후

책을 덮으며 앙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오열했다.

앙리는 카트린을 되찾았고 찬미하는 삶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다른 여인들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사라진 후 모든 거짓과 야망을 버리고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여인을 그리워하며 ‘완벽한 사랑’

이라는 회고록을 쓰기에 이른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인간에 대한 관점과 선악의 문제는 단순하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복합적이며 항상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관점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다음 글에서 드러난다.

“감정은 겉감과 안감에 다 붙어 있다. 증오 없는 사랑이 있을까? 애무하는 손은 곧 단도를 쥐게 된다.

분노를 모르는 사랑이 있던가? 모순을 안은 한 충동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 충동으로 삶을, 생을 전할 수도 있다. 우리 감정은 무엇에서 무엇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검은색과 흰색처럼. 모순 속에서 팽팽하게 긴장된 채. 때론 너울처럼 파동 하고. 때론 구부러지며 흐르는

물처럼 최악이 최상이 되고 최상이 최악이 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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