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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ug 01. 2023

정확한 틀과 생기의 즙

<검은 기쁨>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폭염주의보가 매일 이어지고 있다. 에어컨 없는 집이 더울 걸 알면서도 주말을 함께 보내려고 둘째가

내려왔다. 초복 중복 다 지나고 이제야 삼계탕을 끓여서 먹을 기회로 삼았다. 집보다 시원한 곳을 찾아

도서관에 갔는데 시원함을 넘어 추울 지경이었다.

최근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고 다시 관심을 갖게 된 프랑스 문학  코너에서 이 책을 골랐다. ‘검은 기쁨’이라고? 기쁨이 검을 수 없는데, 일단 콩쿠르 수상작이라니까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단숨에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데, 도대체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신문에서 책 소개로 몇 번 접했던 기억이 났다.


여러 음악 학교 학생들과 높은 수준의 아마추어 또는 미래의 연주자들에게 제공되는 연수에 참가한

크리스가 악셀을 경쟁자로 의식해서 벌어진 사건과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다. 고귀한 품성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악셀에게 도전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크리스는 스포츠 경주에서 산호초가 무너져 익사하기 직전인데 구하지 않고 승자가 되었다. 절대 그러면 안 되는 상황에서 선택한 행동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 생겼다.

오랜 시간 후 둘은 재회하는데 두 사람은 정반대로 변해 있었다. ‘이제 다시는’이라고 코마에서 깨어난

악셀은 정직하고 공평하며 엄격한 절제를 버리고 냉혹한 불량배가 된 반면 야망과 투지로 비열했던

크리스는 관대한 이타주의자가 된 것이다. 결국 증오에 사로잡힌 악셀은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행로와

냉소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크리스를 익사시킨다. 그리고 십 년 후  카인과 아벨 같았던 두 사람은 뒤엉킨 해골로 발견된다.

단편이지만 적은 것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기질은 바꾸기 어렵지만 좋은 데 쓸 수 있다고.

우리는 과연 자신을 변화시키고 바꿀 수 있을까? 인간의 의지, 죄와 벌, 구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다른 세 편의 이야기도 정확한 틀을 갖춘 예술이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는 철학자이면서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다. 작가 일기에서 <검은 기쁨>을 알반

베르크의 음악에 홀렸고 처음 느끼는 감각과 새로운 생각에 기초해서 썼다고 한다. 알반 베르크는

쇤 베르크에게 사사한 뒤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는데  ‘어느 천사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12음 기법'에 특유의 낭만성을 가미해 오스트리아 남부 카렌시아 지방(구스타프 말러가 머물던 베르트

호숫가 별장이 있는)의 민요와 바흐의 코랄 선율을 차용해서 조성 음악적 색채가 짙다고 한다. 2악장의

'진혼곡'에 해당하는 아다지오 부분은 세상을 떠나는 이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고 천상에서의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적 기법의 음악엔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책을 읽고 나서 듣다가 극단을 오가며 요동치는 바이올린과

관현악 합주가 서로 경쟁하듯 펼쳐지는 콘체르토의 선율에 불편한 감정을 느낀 채 깜빡 잠들고 말았다.

생기의 즙을 마신 덕분에 더위를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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