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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ug 16. 2023

밤이 오기 전에

<프루스트 단편선>, 유예진 옮김

도서관에서 책을 찾다가 제목과 책 표지의 그림에 마음이 끌려서 집어 들었다. 프루스트가 청년 시절

20대 초중반에 쌌던 미공개 단편을 모은 소설집으로 아직 미숙하고 완결 짓지 못한 글들도 있다. 책의

번역은 프루스트에 관한 저서를 번역, 집필해 온 유예진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했다. <프루스트의

화가들>이란 저서를 나도 소장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하기 전 그의 생각과 시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작가적 실험과 모험을 엿볼 수 있다. 20세기 초 예술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허무는

구원과 재생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예술가는 사회적 수용 가능한 행동에 집착하면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고 예술은 도덕,

교훈, 합리성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을 자연스러운 감정적 삶의 회복과 생명력을 준다고 보며

최상의 가치를 부여한 시대다.


프루스트는 이성 간의 사랑이든 동성 간의 사랑이든 진실한 사랑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모두

거짓이며 질투, 슬픔, 이별, 죽음이라는 점에서 같다. 어쩌면 그가 동성애자로서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 후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과 그 사랑이 갖는 한계를 일찍이 깨달은 것인지 모른다. 그는 말하자면 아방가르드 예술가였고

자신이 삶의 목표로 삼은 소설작품은 백 년 후에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밤이 오기 전에' 우리는 갈 바를 정하고 길을 나서야 헤매지 않는다. 책 제목이 뜻하는

것은 인생이 끝나기 전에 삶의 의미를 찾고 목표를 정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심중을

표현한 것 같다. 프루스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젊음과 자기 생명의 연한이 길지 않다는

자각을 했다. “문학에서는 한 순간이 다른 모든 순간을 함축한다."라고 <밤의 도서관>에서

알베르트 망구엘이 말하듯 이 단편들에서 프루스트의 색다른 경험과 내밀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프랑스와즈, 아시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고통은 즐거움의 이면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만약 즐거움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다면 질투도 몰랐을 것입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와 나누는 즐거움을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대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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