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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Dec 03. 2023

충만해지는 감성

<마티스와 함께한 1년>, 제임스 모건

“ 중요한 것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보는 행위이다.”


이야기의 긴장감과 대상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느끼게 될 때 소설을 놓지 않고 읽게 된다. 그림은 한번 보고

뭔가 감성으로 와닿는 것이 있어야 다시 보거나 시선이 머물게 된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이 충만해지는 감성을 갖게 된다면 명화가 될 것이다.

보이는 대로(관념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인상파 화가 모네는 루앙 대성당의 서쪽 정면이 마주 보이는 곳에 방을 빌려서 그때그때 달라지는 빛에 따라 똑같은 그링을 스무 점 가량

그렸다. 종교적 대상에 상관없이, 어떤 광경이 아니라 그 광경을 바라보는 행위에 초점이 있었다.

주관적으로 전개되고 결코 고정적이지 않으며, 늘 생성 중인 정신의 과정인 ‘의식’과 ‘의지’인 것이다.


마티스도 자신의 시선으로 보는 행위를 중요시했다. 습관에 따라 왜곡되고 틀에 박힌 이미지들을 배격했다.

"···편견이 마음을 오염하듯, 이런 이미지들은 눈을 오염한다. 왜곡 없이 사물을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용기야말로 모든 대상을 항상 처음 보듯 대해야 하는 화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

그는 마네와 세잔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쇠라의 영향을 받은 시냐크와 친구 사이였다. 또한 모네를

이어서 평온한 전일성의 세계를 통해 ‘안락과 도피와 균형 잡힌 만족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사랑스럽고 관능적인 색채뿐 아니라 자유로운 선과 형태가 조화를 이룬 화면은 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자족적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세계 안에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서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부여하고 있다.

내가 그의 그림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마티스는 빛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의미로서의 색채'를 찾으려고 했다. 인상파 이후로 색채를 생동감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활력과 삶의 환희를 더욱 확장시키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 색채는

자연의 선물이며 예술가의 직무는 자연의 경험을 강렬하게 만들어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었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과 안정된 생활 대신 창조적인 삶에 대한 열망으로 존경하던 마티스의 발자취를 찾아

미국에서 프랑스로 떠났다. 아마추어 화가로서 그림을 배우고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며 더 나은 화가가 되고자 꿈꾼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이 안락의자와 같이 편안함과

위로를 주길 바랐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대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기성 미술계를 상대로 힘들게 싸웠고,

생활이 쪼들려 포기할 생각도 하면서 비참한 시기를 꿋꿋하게 버텨야 했다. 그가 선택한 화려한 색조는

아름답고 풍요롭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티스의 작품을 그저 장식적이고 어여쁜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주의를 거부하고

나선 마티스의 격렬한 불길을 알지 못해 그럴 것이다.

그의 예술을 향한 창조적 의지는 타협을 거부했다. 마티스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고 몇 번이고 그의

모든 꿈과 삶이 무너질 상황에 처했을 때도 혹독하고 격렬하게 그림을 그렸다. 세계 안에서 생각할 여유와 자유로운 고립으로 평형을 이룬 자신만의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저자의 말대로 평온을 향한 마티스의 끊임없는

투쟁에 대해 내 영혼이 반응하는 것을 느낀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이젤 앞에 서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어도 창조에 대한 의지를 멈추지 않고 색종이를 오려서 작업했다. 80대까지 불가능과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가능성을 발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유난히 창이 있는 실내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지중해 연안의 콜리우르에서 앙드레 드랭과 함께 지내는 동안 작품세계의 전환점을 맞으면서 시작되었다. <콜리우르의 열린 창문>은 모로코 등지를 여행하면서 영감을 받은 붉은빛과 초록색 등 원색의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사물로부터 색을 해방시켜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과연 내가 이곳을 넘어 저 세상으로 향해 나갈 수 있을까? 이 창문을 넘어야만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생계를 유지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힘든 시기를 거쳐 가능성과 설렘을 지니다가 1차 세계대전을 맞게

된 그의 내면과 감정이 드러난 <콜리우르의 프랑스식 창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다. 밝고

따뜻한 그의 색채 대신 빛이 없고 세상과 소통할 의사도 없어 보이는 검정으로 침묵과 단절, 상처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색으로만 내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보인 것이다.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 마크로스코의

삭면추상세계가 나오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더욱 감성이 필요하고

예술적 감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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