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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능력이 기쁨!

<oh, William> Elizabeth Strout

by 명규원

오랜만에 여운이 긴 소설을 읽고 아직도 루시와 만나고 윌리엄이 옆에 있는 듯 느껴진다.

두 사람은 이십 년 같이 살았고 이혼 후 이십 년이 되었는데 서로를 '집'으로 여기는 친구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그 마음과 생각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뜻밖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한 부모에게서 나온 내 형제자매가 다르듯이 우리 아이들도 각각의 개성과 세계가 있다.

지난겨울 서울에서 전시회 하는 동안 머물렀던 둘째 딸 집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단지 영어 원서 가운데 펭귄 출판사 책은

커버나 종이 질이 마음에 들어서 선호하는 편이어서 마음이 내켰다. 소설을 영어로 읽기가

쉽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서 약간 걸리는 단어를 찾아보는 수고도 수월하게

여겨졌다. 작가의 문체랄까 스타일이 나와 잘 맞았다.

루시가 친구처럼 지내는 전남편 윌리엄이 최근 겪은 비참한 일들에 대해 공감을 나누고

다시 만나면서 생긴 일들이 펼쳐진다.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생각이 많은 그녀가 윌리엄과

함께 뉴욕을 떠나 소도시로 간다. 자동차로 사골길을 여행하면서 루사는 자신의 과거와 복잡한

인간의 내면세계, 윌리엄의 상처에 다가가고 깊이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가난과 부모의 폭력적인 양육방식, 세상과 격리된 경험을 극복하지

못했던 루시는 공허와 결핍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이 투명 인간처럼 세상에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고 불현듯 덮쳐오는 정체 모를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다.

그레텔이 헨젤을 의지하듯이 윌리엄은 권위가 있는 존재였고, 자신의 유일한 집으로 여겼다.

삶의 방식을 이끌어 주고 안정감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데 윌리엄과 시어머니 캐서린의 과거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권위가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지나온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 루시는 도시적이고 부유한 사람들이 풍기는

향(scent)을 지니지 못했고 여전히 혼자라는 삶이 외롭지만 이제 더 이상 길을 안내해 줄 헨젤은

필요 없어진다.

오히려 그동안 위안을 삼았던 뮤지엄 타워의 불빛처럼 윌리엄을 위로하고 지켜주리라 마음먹는다.

누구에 대해서 아니 자신조차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타인이 나와 다르지 않고 우리는

모두 신화이고 신비로운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과 비슷한 출신 배경과 딸들을 두고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자신이 시어머니와 같다는 자책을 하자

윌리엄이 자동차를 길옆에 멈추고 루시를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한 것은 당신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야. ··· 그런 가정에서 어떻게

당신같이 활기 넘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 당신은 특별하고, 당신은 영혼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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