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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백남준

by 명규원

명절엔 가족이 모여서 맛있는 거 해 먹고 이야기하다가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게 보통이다.

좋은 원두를 두어 가지 놔두고 집에서 드립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요즘

카페를 찾는 일은 덜하다. 그래도 영도에 있는 모모스는 커피 맛과 풍광이 달라서 기분전환

하러 가긴 했다.

모두 모였으니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이번에도 부산 현대미술관을

찾아갔다. <백남준 전시>는 그동안 몇 차례 보았는데 이번엔 회고전 형식으로 여러 자료를 모은

아카이브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독일로 음악을 공부하러 가고 작곡을 하다가 미국에 가서 현대음악 작곡가인 존 케이지를

만난 것이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 계기였다. 지나치게 엄숙하고 억압적인 기성

클래식과 문화전반에 대해 '4분 43초'와 같은 우연성 음악을 시도한 전위예술로 명성을 떨치던

존 케이지에게 백남준은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는 소리, 퍼포먼스로 찬사를 보냈고 아방가르드라는

그의 구태의연한 복장에 반발해 넥타이를 자르기도 했다.

백남준은 세계적인 작가로 현대미술의 새 역사를 썼다. 과학기술의 경이로움을 예술과 접목하고

동양의 정신문화를 반영했다. 그림을 꼭 붓으로 종이나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니라 몸으로, 행위로

할 수 있다는 시도들은 있었다. 그는 기존의 문명을 전면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틀 속에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그는 변방의 한국인인데 주류 유럽의 문화가 별거 없고 바흐의 음악과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그윽한 예술성은 놀라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전기와 빛을 이용한 비디오 아트 세계는 그런 영감을

바탕으로 창조되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온통 시간과 정신을 빼앗긴 TV의 일방적 소통을 문제시하고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기도 하고 브라운관과 모니터를 가지고 놀면서 새로운 미디어를 찾아낸 것이다. 자석과

전기 작용으로 변화를 준 여러 가지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상상력의 세계를 무한히 넓혔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것을 해서 사람들의 통념을 깨고 일탈과 잠입, 해학과 파격, 동양과 서양

사이를 종횡무진하면서 자유로운 자신의 세계를 추구해 나갔다.

백남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미술이. 아닌 음악 전공자로서 아예 처음부터 규칙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나 보고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 그를 남다른 예술가로 인정하게 만든다.

그림이 뭔지 인간이 뭔지 어떤 주장이나 주의를 사람들에게 강조하거나 주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백남준이 뭐지라고 물으면 그는 자기 생각이 있고 장난꾸러기 같은 동심을 지녔다기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 간 사람이다. 또한 붓으로 그린 선 그림에서 느낄 수 있듯이

화가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비디오 아트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분야가 생기고 영상뿐 아니라

과학기술이 예술을 변모시키고 있다.

백남준은 자신의 얘술적 토대를 ‘아방가르드의 고고학’이라고 개념화했다. 실험정신을 가진 아방가르드와

과거를 발굴하는 고고학의 결합인 것이다


나는 일상에서 아름답다고 느낀 경험과 순간을 주변에서 구한 재료를 가지고 표현해서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화석처럼 견고하게 남겨 놓을 수 없다. 나는 최소한의 재료와 붓, 콩테, 파스텔로

종이나 천에 그리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예술을 포함해서 시간 속에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은 좋고 나름 견고한데, 유지 보수에 경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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