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by 명규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까지, 일터에 출근하더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책을 읽거나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적어도 한 달, 아니 일 년?

세상을 떠난 부모에 대해 쓴 작가들의 책 가운데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 폴 오스터와의 대화를 엮은

<글쓰기를 말하다>에서 페터 한트케가 쓴 어머니에 대한 책 <소망 없는 불행>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언급한다. 나도 구순을 맞이해서 어머니에 대한 책을 써보겠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 책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대출받고 보니 작은 책이다.

뜻밖에 50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죽음에 경악하지만 자긍심을 느끼기도 한다는 작가의

솔직한 표현에 놀랐다.

어머니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많이 알고 개인적인 관심이 컸기 때문에 자신의

슬픔을 극복할 방법으로 작가는 기자처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서술하려 한다.

그런데 거듭 회상하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문장으로 구성하려고 애쓰는 일이 너무도 힘든 것을 느낀다.

전달하고자 하는 절박한 욕망과 말문이 완전히 막히는 것 같은 감정들이 실체를 띠고 공포스럽기까지

한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다."


어쩌면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의 틈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러 메꾸지

않고 언어로 표현한다는 한계, 실패를 드러내며 그 자체가 애도의 형태가 되도록 했다.

어머니에 대한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왜 공적으로 옮기게 됐을까?

가난한 농민층으로 어린 시절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더 공부하고 싶어서 애원해도 진학은 불가능했다.

요리를 배우며 도시로 나가 자신의 세계를 찾는 모험과 사랑을 경험했으나 한계를 느낀 채 돌아온

어머니는 결혼하고 전쟁을 겪으며 전후 오스트리아의 구조적 억압과 빈곤을 감내해야 했다.

가난한 살림으로 단칸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미래의 가능성이란 없던 시절 여성의 삶은 소망을 가질 수 없었다.

소망 없이 사는 걸 모두가 불행하게 생각했지만 다른 삶의 형태와 비교할 가능성도 없었다.

본성이 재기 발랄하고 호기심 많고 사람들을 좋아했던 어머니, "그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될 수도

없었다." 외로움과 고독감 같은 것을 느끼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즐겁게 지내려고 한 것이다. 그런 삶은 모든 개성적인 것이 유형적인 것에 용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면, 개인에게서 인간적인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녀는 존재했고 성장해 갔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대적 한계와 출신 배경에 묶인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어머니가 배우고 싶은 욕망을 가졌던 것은 아이였을 때 뭔가를 배우면서 자기 자신에 관해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신문을 읽었고 대학생이 된 작가와 함께 독서를 하면서 생기를 얻었다.

자신의 삶을 묘사한 것 같은 책을 좋아해서 자신을 감싼 껍데기로부터 벗어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점차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여자>가 되어 갔다.”

알코올 중독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남편에 대해 연민을 갖고 집 밖에서 기품 있는 표정을 짓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머니는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더 이상 주부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신경쇠약 중에 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쳐도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산다는 걸 생각할 수 없게 되자 편지들을 써서 보내고 장기 처방전으로 받은 약을

먹은 후 영원히 잠들었다.


< 드디어 평화롭게 잠들게 되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눈이 몹시 쏟아진 날 공동묘지에 안장하고

무덤가에 나무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자연이 정말 잔인하다고 느낀다.

수없이 많은 나무들 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숲에 우롱당한 듯 갑자기

쓰러지고 말 것 같은 분노 속에서 어머니에 대해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고통스러운 추억과 쓰라린 감정, 공허와 공포 같은 것들에 대해 나중에 훨씬 더

자세히 쓰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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