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화가들> 유예진
마침내 프루스트의 전집을 구입했다. 작은 꽃그림으로 장정이 마음에 들고 종이질도 좋다. 책꽂이에서
꺼내 펼쳐보는 맛이 있다. 나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오랫동안 안고 있었는데, 최근 서울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불문학 전공자로서 프루스트를 통독하지 않은 부끄러움을 남몰래 간직해 오다가 소설 독해를
시작하고 <프루스트를 읽다>를 펴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려운 것은 프루스트처럼
세상에 대한 섬세하고도 호기심이 충만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평가대로 나도
청춘기에는 딴 세상처럼 멀게 느껴졌었다.
프루스트가 추구한 세계는 잘 알려진 작가들과 철학자의 관심에 의해 언급되어 왔다. 사람들의 영혼을
그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것, 꾸밈없는 상태의 순수한 인간에 다가서고자 했다는 것이다. 1편에서 나도
느꼈듯이 참으로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신성하고 마술적이며 초월적인 순간을 찾는다. 그에게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기억들'이 가져다주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야말로 과거로, 무의식으로 이어지는 왕도가
된다. 방대한 이야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파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는데 자유분방한 성향의
예술가들과 몰락한 귀족, 넉넉하고 교양 있는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살롱 문화에 대한
향수가 담겨있다.
그의 문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오직 작가의 관찰을 통해 자신에게만 보이는 고유의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것,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의 메아리를 찾듯이 그는 내적인 세계의 또 다른 가치를 드러내 준다. 샤르댕의 정물화가 미처 몰랐던 주변 사물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는 것과 같다. 뛰어난 화가의 그림으로부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그는 세심하게 우리의 시선이 사물과 모든 현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프루스트가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접하고 예민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특히
그림과 화가들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화자인 마르셀이 위대한 예술작품 앞에 서게 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감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가 현재와 과거를 잇는 초시간적 예술작품의 창작활동에 있음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도 예외 없이 시간의 희생양이
될 것임을 알고 더 이상 소모적인 사랑 혹은 사교계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영원히 빛을 발하는 것은 진정한 예술뿐이라는 자각에 이르는 대목이다. 프루스트의 화가들은 중세 화가 지오토로부터 르네상스
절정기의 보티첼리와 벨리니,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베르메르와 렘브란트, 그리고 인상파 화가 모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와 함께 감동을 주는 이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탄생시키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다.
마르셀이 콩브레의 레오니 고모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던 시절 알게 된 지오토(조토 디 본도 네,1267-1337)
는 르네상스가 꽃 피기 훨씬 전에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활동했다. 그는 고딕 조각의 실물과 같은 인물들을
회화에 대입시켰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평면 위에 원근법과 깊이의 환영을 창조해 내는 미술의 신기원을 이룬 화가로 평가한다.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실감 나는 감정과 동작들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것과 같은 회화다. 인물들의 움직임이 마치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사건처럼 느끼게 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표현함으로써 서구 미술의 새 장을 연 위대한 인물이다.
프루스트는 고딕 미술가들, 북유럽 성당의 위대한 조각가들에게 크게 감동받았다. 그리스 미술과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성서의 이야기를 더욱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화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오늘날 무엇을 표상하느냐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는데, 그는 시대를
앞서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 현대 미술의 흐름도 소재나 주제를 넘어서 표현 방식을 문제 삼게 되었으니까.
"작가는 전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사소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거기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저자 유예진은 이렇게 프루스트의 글쓰기 특성을 잡아낸다. 그림의 주제나 전체적인 메시지보다 미세한 부분에 끌린 그의 감정을 작품을 통해 파악했기 때문이다. 미술을 전공한 부모를 따라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미술관에 드나들었던 저자의 경험이 있기에 프루스트의 소설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고,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침서를 내놓게 된 것이다.
프루스트에게는 작가로서의 길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준 영원하고 불변하는 존재가 살아있었다. 아들이 천식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것을 염려하며 경제적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살게 해 준 어머니 덕분에 그는 일생을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는 베네치아 여행에서 어머니와 같이 예술작품을 보았던 것 자체로 기쁨을
느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름다움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사물을 보고 그것을 표현한 화가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모험이나 흥밋거리가 없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글을 문학작품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베르메르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화가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생각한 <델프트 풍경>, '노란 벽의 작은 자락'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그는 쇠약해진 몸으로 전시장을 찾아갔다. 작품 속에서는 베르고트의 죽음과 서점 진열대에 놓인 책들이 작가의 부활을 상징하게 된다. 그렇게 프루스트는 삶의 유한성과 예술 작품의 불멸성을 재확인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브런치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