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by 명규원

어머니 구순을 앞두고 책을 내자는 의견이 있었다. 어머니는 비교적 대화를 많이 나눈 내가

써주면 좋겠다고 해서 기뻤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었다.

마침 N 수생 아들의 도시락을 싸는 일도 마쳤고 그이와 큰딸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해서 모처럼

장기 휴가를 얻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마침 광주에 꼭 보고 싶은 전시회가 있어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무등 현대 미술관 관장님이 나의 은사이기도 해서 전시회도 보고 선생님도 뵙고 싶었다.

여느 때 같으면 1월 9일 아버지 추모일을 지키기 위해 부산에서 왔을 텐데 12월 27일

오후에 어머니 집으로 왔다.

나를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는 반가워하시며 볼을 비비고 안아 주셨다. 내가 가져온

방울토마토를 드시라고 꺼내놓으니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남았다고 가져오셨다.

마침 언니 집에 망년회 겸 집들이가 있는데 같이 가게 되어 좋다고 하셨다. 언니는 맏손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넓은 평수로 이사 가서 큰 딸 가족과 합쳐서 살게 되었다. 판사인

조카가 서울에서 어린 두 아들을 케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주의 강남이라 불리는

봉남동(봉선동)이 가장 좋은 학군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 다섯 형제자매가 부부동반으로

모였는데 나만 혼자였다. 모두 들뜬 분위기에 차린 음식도 많고 큰 잔치를 벌였다.

어머니는 즐거워했지만 기운이 없는지 식사를 조금 하시고 시끌벅적한 가운데 의자에

누워 쉬었다. 10시쯤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 내 잠자리를 봐주시고 침대에

누우셨다.

나는 고단해서 잠이 들었고 아침 일찍 어머니가 가슴이 불편한 듯 기침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나를 위해 아침밥을 짓고 있는 것을 느끼며 잠자리에 아직

누워있을 때 어머니가 “내가 안 좋다. 혈압계 좀 가져와 봐라.”라고 해서 벌떡 일어났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어머니가 숨쉬기 어려워하고 불러도 의식이 없었다. 동생에게

전화했는데 받지 않자 119에 전화했다. 위급한 상태를 알려주자 즉시 와서 전남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어머니는 2024년 1월부터 폐대동맥류가 발견되어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거부했다. 스스로

삶을 개척해 오신 것처럼 죽음의 주도권을 갖기 원했다. 어쩌면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자립한 존재로서 인생을 완수하고 싶어 한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에게 맡기면서 적극적으로 맞이할 자세를 지녔다고 할까.

위험한 고비도 몇 번 겪고 자식들의 보살핌과 걱정 속에 호전되어 가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하느님은 가장 좋은 시기를 예비해 두셨고 어머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을 나누며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주변 사람들과 더 다정한 시간을 보내며

인사를 건넸다고 조문하러 온 친척들이 말했다.

모두 내가 종신했으니 다행이라고 관심을 보였다. 어머니가 나를 보기 위해 기다리셨다고

하는 데 내가 일찍 일어나서 안색을 살폈어야 했다. 돌아가시는 순간이 너무 짧았고 내가 어떻게

해드리지도 못했다. 부엌에서 고통을 느끼고 방으로 걸어오는 동안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그리고 누워서 의식을 잃었으니 죽음을 맛보지 않고 황망히 떠나셨다. 12월 30일 결혼기념일에

아버지 묘에 합장했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하고 따스한 햇살이 우라를 감싸줬다.

좋은 죽음이란 것이 있을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터럭만큼의 부담도 주지 않고 평안히 돌아가셨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고령에 큰 수술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살만큼 살았으니 여한이 없다며

현명한 선택을 했고 연명치료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가 어머니 속마음을 더 알고 싶어 메모해 둔 물음들 중에 한 가지 답은 겨우 얻었다.

"나는 살면서 힘들 때 엄마를 찾을 수 있지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떻게 버텨울 수 있었어요?"

"나는 눈앞에 사랑하는 자식들이 있었지, 자식들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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