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아담 자가에프스키
얼굴
저녁 무렵의 광장에서 빛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게걸스럽게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저마다 다른,
웃고, 아파하는 얼굴들을.
나는 생각했다. 도시는 집을 짓는 게 아니구나.
광장이나 가로수길, 공원이나 넓은 도로를 짓는 게 아니라
등불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짓는구나.
늦은 밤, 구름처럼 피어나는 불꽃 속에서 땜질을 하는
용접공의 점화기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아담 자가에프스키, ‘얼굴‘
폴란드의 대표적 시인은 어린 시절 고향 르부프에서 추방당했고
정치적 탄압을 피해 떠돌며 여행자처럼 살았다.
인생의 고독한 여정에서 ‘나는 누구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타인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라고
그는 말한다.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사람에게 고향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은 또 얼마나 컸을까?
나도 고향이 있지만 정겨움을 잃어버려서 안타깝다.
광장으로 나와서 저마다 다른, 각자 뭔가를 생각하고 설득하고,
웃고, 슬퍼하는 얼굴들을 쳐다보며 그들의 마음과 진실을 읽어 내려고
더 이상 애쓰지 않는다. 종족주의의 ‘닫힌 공간‘이 되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다.
도시는 집과 공원, 도로를 짓는 게 아니라 등불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짓는다는
사실을 시인은 깨달았다. 아름다움은 타인의 얼굴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아담 자가에프스키 시집의 제목이 마음을
울린다. 시인이 레비나스의 철학을 알고 공감했던 것일까?
레비나스에게 타자의 얼굴은 우리 '밖에서' 우리의 유한성의 테두리를 깨뜨리고
우리의 삶에 개입한다. 타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존재다. 그런 타자가
구체적인 현존,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호소로서 그리고 놀라움과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얼굴'은 나의 주도권과 권력, 어떤 형식, 맥락이나 의미부여에도 앞선
것이다. 타자의 곤궁과 결핍은 하나의 명령으로 나에게 다가오며 내가 정의로워야
한다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의 존재를 자기 속에 받아들이고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를
형성할 때 진정한 주체성이 비로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