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하고 정직한 삶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최상의 것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을 준다. 부유함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건강하고 보람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또 누가 주거나 공짜로 얻을 수도 없다. 사랑하는 순간엔 그저 바라보고 있어도 좋고 행복감이
스치긴 하겠지만···.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체념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 수준에 맞는 삶을 살고 허황된 것을 바라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욕망에 사로잡혀서 거짓과 편법, 불의를 일삼는다면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그 결과가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진실하고 정직한 삶은 남이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가난과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버림받지 않고 살 수 있게 한다. 건전한 상식과 삶 전반에 대한 식견을 갖춘
사람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알기 때문에 결국 남을 도울 수 있다. 그런데 좋은 말만 하고 이미지를
포장하면서 사리사욕에 물든 사람들, 공정성을 해치고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 행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불행을 야기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행복은 인격이다."라고 말했다. 괴테도 그 말을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인간은 미칠 수 있는 모든 영향을 그 인격의 힘으로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세상적인 가치보다 자신의 인격을 우리 삶에서 목적으로 삼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삶을 영위할 책임이 있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고 가꾸어나가야 한다. 그런 노력이 선한 뜻과 영향력
으로 나타나고, 사회나 이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격의 힘을 지닐 때 우리는 더 큰 축복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칸트도 대망을 품은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도우려 했다고 한다. 그가 자주 강조한
경구는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함'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 '스스로 탐구하기'- '제 발로 서기'.
비록 학문이나 신앙을 통해서 인격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도덕적으로 개선하려고
힘써야 한다. 생각은 행동으로 연결되고 인격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지옥이나 천국은 사후의 세계에
있는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앙드레 지드는 <일기>에서 '내면의 지옥'에 대해 말한다. 오래전 밀턴도
<실낙원>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어느 쪽으로 달아나도 지옥,
나 자신이 지옥이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윤리적 명제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