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란?
아주 가끔 만나지만 생각과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읽었던 책을 내게 주었다. 그냥 부담 없이 읽어 보라는
뜻으로 받았다. 나는 책을 쉽게 사지 않고 내 책을 주지도 않는다. 선물하고 싶은 책이야 사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본 다음 정말 몇 번이고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판단이 설 때 구입한다. 집에 책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책과 중요하지 않은 책들을 뒤섞어 꽂아두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인문학이 뭐예요?"
늦둥이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물어보았다. 집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도대체 뭐길래 저러는지 알고
싶었나 보다. 달리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인문학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철학, 역사, 문학을 연구하는 학문분야란다."라고 했다.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인간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라고 해줄걸...
그런데 최진석 교수는 한마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고 한다. 이 말은 한문을 풀이한 뜻인데 무늬를 쓰면 글자가 되는 것이고 무늬의 흔적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무늬의 내용은 생각이다.
이런 설명을 그때 해 주었더라면 아들이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인문은 인간이 만든 문자와 문화를 뜻한다고 보고
저자는 인간의 삶과 역사,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인문학이 왜 중요할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향상되어가는 현대 문명 속에서 스티브 잡스처럼 인문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더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이 나날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넘쳐나는 정보를 선택하고 결정하기 위해 '통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종 많은 정보 속에서 빈곤을 느끼는 경우가 있듯이 의미 있는 정보를 정리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물이나 사태를 꿰뚫어 보는 능력은 기존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뛰어넘을 때 가능하다.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정해진 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념, 개념, 가치관 등은 과거의 생각을 가두고 공동체에 종속시키는 포획물이다.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집단이 공유하는 이념이나 가치관의 굴레를 벗어버릴 때 가능하다.
따라서 나를 가두는 감옥에서 벗어나 '나'라는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고,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중요한 목표다. 그래야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길 수 있고 즐겨야 잘할 수 있다. 어떤 사명감에 짓눌리거나 마지못해 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사회는 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고 관찰할 수 있을 때 철학이 시작된다. 세상을 읽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력'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더 잘 살아갈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공동체나 집단의식에 메몰 되지 않는 개개인의 자율성과 자유의지가 중요해진 상황을 반영한 주장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통찰력이 무엇일까? 뭔가 중요한 일깨움을 찾던 중에 카렌 암스트롱이 쓴 <축의 시대>를 펼쳐보다가 칼 야스퍼스의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을 개선하여 이상에 다가가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고대인들이 지녔던
통찰에 한참 뒤떨어진 현대인들은 유행을 노예처럼 따르고 미의 기준을 복제하느라 자기 얼굴과 몸에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신을 숭배하는 대신 유명인을 우상으로 삼고 고양된 느낌을 나누거나 그 대상을 모방한다.
서로 죽이고 죽는 폭력과 약탈이 난무하던 고대에 인류의 정신적 탐구가 이루어졌다. '축의 시대'란 독일의 칼 야스퍼스가 주장한 개념이다. 1949년 출간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인류의 정신적 기원으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예언자와 위대한 스승들이 기원전 900여 년부터 기원전 200여 년까지 나타났고 이 시대에 놀라운 사유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했다. 거슬러가면 기원전 2600년경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유교, 힌두교, 불교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제의가 먼저 생겼고 점차 인간의
이해력이 커지면서 지역의 자연환경에 맞게 신에 대한 관념과 종교가 신념으로 체계화되었다.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기에 깨달음과 종교적 현자, 예언자, 철학자들이 나타났다. 우주와 인간과 삶에 대해 서로 교류가 없던 네 지역에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잘문이 터져 나오고, 신화적 인식에 대한 이성의 투쟁이 시작되면서 윤리적 각성과 철학적 성찰은 인류 정신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결과 신을 의식하고 인간관계에 주목하게 되면서 '자비'와 '윤리'가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인류는 문명을 이루고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며 지신만의 무늬를 그리라는 것, '우리'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나'로 바로 서야 하고
정해진 답이 아니라 질문하는 삶을 통해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는 최진석 교수의 책과는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각이 '무늬'와 '꾸미고 만드는'에서 서로 통한다. 지식과 경험이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는데, 인간의 행복이 그만큼 커졌을까? 더 자유롭고 관용적인 사람들이 되었는가?
인문학적 토대 위에 나와 다르지 않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이고 보니 '축의 시대'가 여전히 커다란 울림을 주게 된다.
#브런치 북
"인간은 매우 깊은 의미에서 꾸미고 만드는 존재다."
<The Origin and Gole of History>,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