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and a day

영화 <영원과 하루> /<천 하룻밤의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by 명규원



안개 낀 풍경,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의 낡은 집에서 늙은 시인 알렉산더는 외롭게 죽어가고 있다.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으로 존경받았지만 죽음 앞에서 지난 세월은 덧없이 무상하기만 하다. 병원 신세를 지기보다 마지막 생의 순간을 평생의 숙업인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시어들을 찾아 나서려 한다.

짐을 정리하다가 30년 전 아내 안나가 쓴 편지를 우연히 찾게 되면서 과거와 현실, 기억과 환상이 교차하는 신비스러운 여행이 되어간다. 편지는 젊은 날 아내와 가족, 친구들과 함께 보낸 아름다웠던 하루로 그를 데려간다. 회색빛 절망의 현실과 눈부신 햇살로 가득한 과거를 오가며 일에만 매달려 아내를 외롭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 그때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을까?'

알렉산더의 때늦은 후회는 다시 한번 그를 절망에 빠뜨린다.

마지막 순간 삶의 의미와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찾다가 길 위에서 보낸 긴 하루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와 같이 보낸 알바니아 난민 소년이 전해 준 솔로모스의 시어가 또 하나의 깨달음을 준다.

코폴라(작은 꽃), 세니피스(망명객), 마르가 디니(너무 늦었다)! 인생이 세 단어로 압축된다. 물론 코폴라는 안나를 뜻한다. 알렉산더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그 어떤 위대한 시어보다 아름답고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불멸의 시어가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엔딩은 소년과 헤어져 텅 빈 아파트로 돌아온 노시인이 어둠 속에서 베란다의 문을 연다. 그러자

행복했던 그날의 정경이 다시 펼쳐지고 안나는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로 그를 맞이한다. 사랑을 일깨우게 된 알렉산더가 "내일이란?"하고 묻자 "영원하고도 하루"라고 답하는 안나. 그들은 함께 춤을 춘다.


15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두 개의 뿔', 동양과 서양을 자배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신의 궁극적 기념비라고 생각하며 창건한 도시였다. 그는 알파벳과 호메로스를 통해 문화를 통합해 나갔다.)에서는 이상한 역사를 담고 있다는 일련의 이야기들이 채집되었다. 처음엔 인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페르시아, 소아시아를 거쳐 마침내 아랍어로 씌어 카이로에서 편찬

되었다. 바로 <천 하룻밤의 이야기>인데 보르헤스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했다. 그는 책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천 하룻밤의 이야기>가 동양을 떠올리게 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를 읽기 전에는 <千日夜話>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다. ‘천’이란 말은 셀 수 없이 많은 밤들을 의미하고 '무한'의 동의어처럼 여겨진다. 성서에도 무한 개념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천'이 나온다. There is no difference in the Lord's sight between one day and thousand years: to him two are the same. <베드로후서 3장 8절>

‘천 하룻밤'이라는 것이 무한한 밤에 하나를 덧붙였듯이 영국식 표현도 '영원히'라는 말 대신 '영원하고도 하루 forever and a day'라고 재미있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영원과 하루>가 함축한 의미는 보르헤스를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덧붙인 하이네의 시구 "나는 당신을 영원히, 심지어는 그

후에도 사랑하리라"는 진실한 사랑의 갈망이 끝없음을 떠올려주고···.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가령 사랑이라는 감정이 들면 때로 병처럼

아프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11월이 시작되면서 그 시절 떠나간 시간들과 찾고 싶은 사랑이 커다란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세월에 닳지 않는 것이 마음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그 실체를 만나고 싶어 몹시 흔들려도 견디는 중이다. 30년, 40년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처럼 느껴지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의 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