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나는 한 줄기 햇살에 갇힌 먼지 알갱이처럼 붕 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실내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무수한 먼지 알갱이들을 비춘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존재에 내가 쌓여 있다는 사실이 초현실적일 때가 있는데 역시 작가라서 잘 표현해 낸다.
오래전 서점에서 구입한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을 통해 아멜리 노통브라는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었다.
마치 기억해 내기 어려운 어린 시절이 순수하고 찬란한 빛을 띠고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작가가 경험했을 어린아이의 신비한 세계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둘째 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행동양식에 내재하는 수수께끼를 간파하는 것이 그녀의 독특한 점이다.
그녀의 소설에는 '적'이라 불릴만한 이해하기 힘든 타인이 등장한다.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웃으며 지켜보고만 있는 보모처럼(물론 일본의 문화와 정신을 깊이 이해하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소설에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성가신 침입자가 등장한다.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집요하게 신경을 건드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적과의 결투'가 곧 그녀의 글쓰기라고 한다.
누구나 바라고 꿈꾸는 삶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 주변엔 미리 계획한 대로 은퇴 후 전원주택을 짓고 집을 가꾸는 즐거움으로 사는 친구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 에밀도
그렇게 조용한 노후를 시작했으나 오후 네 시만 되면 이웃 남자가 찾아와 6시까지 머물다 간다. 대화를 시도하며
애써 묻는 말에만 그렇소, 아니오,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면서•••. 이웃집 의사인 베르나르댕은 매일 두 시간씩 에밀의 안락의자를 차지하고 사생활을 침해한다. 비상식적인 이웃의 방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피해서 산책을 나가기도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온다. 아프다거나 정중하게 나가 달라는 말도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이웃을 피할 방법이 없다. 에밀은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무례한 이웃의 방문 목적을 추측한다. 문제는 베르나르댕에게 하던 질문이 언젠가부터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댕은 공허 그 자체였고, "공허의 힘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에밀은 그가 공허한 삶을 끝내고 싶어 하며 자신이 그 죽음을 도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평생 상식적이고
교양과 예절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던 에밀은 이웃을 배려한다는 명분 아래 자동차 배기가스로 그를 살해한다.
아내는 에밀과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변함없는 신뢰와 경청으로 그의 존재를 떠받쳐 주었다. 그러나 가려진 내면의 다른 인격체를 만나자 경악한다.
"사람은 자기 안에 정체되어 있는 커다란 덩어리를 갖고 있지.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잃고 체념하게
되는 순간, 그게 밖으로 나오는 거야.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희생물일 뿐이야."
우리는 어떤 형태로는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간다. 마음의 문은 감성과 감각을 통해 열리고 정신과 영혼을 일깨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런 탈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행위들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식하든 못하든
삶의 의미 찾기를 통해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우월감이라는 생명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나'라고 믿는 것이 실제로는 정반대일 수 있다.
<도덕의 계보> 서문에서 니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라고 시작한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에 대해 탐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이방인이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에 대해 판단이나 규정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에밀은 베르나르댕과 마주한 시간에서 숨겨지고 억눌린 자신의
실체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내면의 '공허'를 부정하기 위해 그를 대신 응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일 에밀이 타인을 깨달음의 계기로 삼았더라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베르나르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더면, 그를 혐오하는 대신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에밀과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한 데가 있는 그가 찾아오는 이유, 외로워서 인간적인 관계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서로 구원 받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