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희망도 없는 세상

<페스트> 알베르 카뮈

by 명규원


피가 뜨거웠던 청춘은 벌써 지나간 지 오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컸었다. 그런데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세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어느 정도는 방관적으로 살아왔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주변의 요구에 맞추며 살았다. 늦둥이 아들이

선천성 심장이상으로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아야 했으니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미래나

꿈을 위해 달리기보다 급박한 현실에 매몰되었고 현재에 충실할 뿐이었다.


요즘 <페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그전처럼 낯선 상황에 애써 몰입할 필요가 없어진 반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숙제를 잘 해내려고 한 모범적인 학창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무엇인가를 해 나가는 사람으로 나름 독자적인 삶을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페스트로 도시가 폐쇄된 오랑시의 주민들도 죽음의 위협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쓴다. 갑작스러운 재앙보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인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옆에 가까이 언제든 어깨에 손을 얹을 수 있었던

가족과의 생이별을 겪었다.

“사랑은 이미 미래가 없는 인내에 불과하고, 좌절된 기대에 불과하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 빼앗아 버리고 말았다. 꿈이 없는 동시에 환상도 없는 똑같은 체념 속에 살아간다면 얼마나 암울한 세상인가!


"기억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페스트로 모든 것이 '현재'로 변해 버린 오랑시의 시민으로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인생은 무덤으로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별다른 기대나 욕망도 없이 촛불이 점점 사그라들듯이 사라지는 것···!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나비효과'처럼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파동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박제되다시피 한 기억이 의식 속에 뚜렷이 등장하면서 감추어진 내 마음을 읽게 된 것이다.

봉인된 사랑을 일깨우는 마법처럼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

그땐 알 수 없었고 그럴 여유도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 해도 이 그리움을 막을 수가 없다.

이렇게 나 자신을 알아차린 결과가 가져올 삶의 균열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이제 와서 꿈을 꾸고 희망을 품는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놓쳐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만나서 새로이 추억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기억은 혼자 하는 것이고 추억은 서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의미에서 소중한 것이다. 사는 데 힘이 되어

주니까. 적어도 사는 게 뭔지 말 한마디 그리울 때, 차 한잔 마시고 싶을 때 만나 줄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괜찮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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