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도 기쁨이
내 모든 힘을 다 쏟았다고 느끼는 순간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아기가 태어났다.
난생처음 겪는 산고는 고통에 고통을 더해갔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외로웠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얻은 기쁨은 더
컸다. 내가 엄마가 되어 세상에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얻게 된 것은
세상의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이고 역동적인 경험이었다. 고통 속에 충만한
기쁨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차원이고 깊이가 있었다.
극도의 고통과 기쁨을 거의 동시에 느끼며 인간으로서 지극한 경험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가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생각할 때 모든 존재의 근원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더 완전하고 통합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에서 초월적인 존재자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의 분열적인 자아가 내적 통일성을 이루고 탁월한 가치와
윤리에 뿌리를 두게 되면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된다. 비록 삶의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없을지라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나 종교적 삶에는 자기 탐닉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신이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개인적인 관심사에 근거해 자신을 만난다거나 요구를 들어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초월적 경험과 주관적 확신 속에 살아가게 하는 신비주의적 종교적 감정은 자칫 현실을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 신비나 몰이해에는 삶을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는 안식처가 없다.
예술 행위도 초월적이고 역동적인 경험이다. 피폐한 세계에 '무한', '절대', '영원' 등
고차원적인 의미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풍요롭게 한다. 특정한 감정들을 새롭게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예술은 '영원성'을 향한 인간의 불가능한 욕망에서 탄생한 것이다. 음악이
없다면, 시와 소설, 그림이 주는 위로를 얻지 못한다면 살아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어떻든
예술이라 불리는 다양한 세계와 만나게 되고 대중매체를 통해서 매일 즐거움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올 가을 개인전을 열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재현하고 현실을
모방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화가는 질료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형상이 주는 풍요로움과 의미를 담아내려고 한다. 바로 해석과 상상이라는 작가의
시선이 들어가는 것이다. 과연 출산하듯이 내 힘을 다 쏟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아이들만큼 사랑스러운 작품이 나올까? 불가능한 줄 알면서 도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