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마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by Surf the world


2022년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인 유행어인 중꺾마.


김혁규 선수가 리그 오브 레전드 2022 월드 챔피언십 예선전에서 패배 후 했던 말을 기자가 기사 타이틀로 뽑는 과정에서 생성된 문구로, 김혁규 선수의 우승과 함께 서사가 완성되었다.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 데프트(김혁규)의 인터뷰 원문



DRX 데프트(김혁규)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 문대찬 기자의 인터뷰 영상 제목.




이 서사를 이해하려면 김혁규 선수의 도전기를 좀 더 알아야 한다.


데뷔 직후 4강에 오른 것을 커리어 하이로, 이후 다섯 번이나 8강에서 탈락한 경험을 한 김혁규 선수는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 도전, 라스트 댄스라는 이름으로 출사표를 던진 그의 간절함을 알기에, 이 인터뷰가 예선전 패배 직후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의 서사는 우승을 통해 완성되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꺾이지 않던 마음에 찬사를 던졌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레질리언스가 강한 것 같다고 했다.

다시 되돌아오는 힘, 즉 회복력, 탄성이 좋다는 말이다.

그때는 기분 좋고 넘어갔는데, 최근 이게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나는 몇 가지 큰 실패를 겪었다.

간절히 원했던 연구실, 선망했던 연구소, 유학에 필요한 논문, 장기 계획의 초석이던 건명원까지 모두 떨어졌다.


모두 합격에 근접했다.

연구실에서는 교수님께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지만 떨어졌고, 연구소 면접도 좋은 분위기였지만 마지막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논문은 1차를 통과했으나 최종에서 탈락했고, 건명원도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꽤 간절했기에 저 중 한번은 결과를 보고 눈앞이 잠시 까마득해진 적도 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배운 점이나 떨어짐으로써 오히려 다행인 점을 생각하며 잘 털어냈다.


예전에는 아쉬움을 잘 이겨내는 것이 내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천적 학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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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학교 축구 대회를 계기로 난 축구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졌다고 할만한 것이 축구를 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해본 것 같다.

축구 대회 직후, 미국으로 1년간 유학을 갔었는데 매일 같이 축구공을 들고 뒷마당에 가서 리프팅(발로 공이 떨어지지 않게 연속적으로 튀기는 기술) 연습을 했다. 정말 지독히도 안 늘었다. 매일 유튜브 영상을 보고 공부하며 연습했음에도 1년 후 6~7개 차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등학교 진학전 까지 1년간 매일 같이 새벽 조기축구 동호회에 나가 아저씨들과 공을 찼다.


소규모 인원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풋살이 유행이던 이곳에서 나는 매일 밤 혼자 나가 슈팅 연습을 했으며,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한 경기라도 더 뛰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합류한 학교 풋살팀에서는 자주 꾸중을 들었고, 대회에 나가서도 교체로 잠깐 뛰거나 대부분을 못 뛰었다. 당시 축구를 잘하던 친구 중 한 명이 내 노력을 종종 비웃곤 했는데 그럴 때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부상은 또 자주 당해서 실력이 늘법하면 다시 꺾이고, 다시 노력하고를 반복했다. 그때의 부상으로 나는 양쪽 발목에 인대가 하나도 없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고, 부상으로 팔이 부러지고 나서야 축구를 놓아주었다.



축구만이 아니다.

난 기타와도 사랑에 빠졌었다.

기타를 잘 치고 싶어 할 수 있는 것도 다 해 봤다. 하루에 5시간은 기본, 매일 새벽 3~4시까지 동호회방에서 연습을 했다. 나열하려면 축구 이상으로 적을 수 있지만, 여기까지 읽었다면 어떤 맥락인지 알 것 같아 줄인다. 결국 축구하며 얻은 부상의 영향으로 기타도 놓아주게 되었다.



작은 성공들도 있긴 했다. 내가 합류했던 고등학교는 초, 중,고가 통합된 학교였다. 고등학교에 되어서야 합류했던 나와 내 동기들에게는 학교 내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풋살부, 밴드, 교내 특별 활동 등은 기존 학생들의 차지였다. 나와 동기들은 뭔가 같이 해보고자 열심을 냈지만, 점차 한 두명씩 포기했다.

정말 난 꺾이지 않았다. 끝까지 노력했고 풋살부와 밴드, 교내 특별활동 등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합류 후, 오히려 더 많은 갖은 수모가 시작되었지만, 언젠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념 하나로 견뎠다.


대학 가서도 포기하지 않고 잠을 줄여가며 축구와 기타에 매진했으니 내 노력에 대해 난 스스로에게 당당하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없었다. 나는 결코 내가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없었고, 재능의 한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축구와 기타를 내려놓을 때 난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못 놓던 걸 놓아서 편해졌다기보다는, 그동안 많은 노력과 마음 고생을 버텨내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단단해졌다.


발전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음에도 노력하는 건 때론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약 10년간 축구와 기타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사랑해서였다.


요새 난 내 연구를 사랑한다. 연구를 위해 잠을 줄이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연구는 내 적성에 맞아 하면 한 만큼 발전하는 것이 보이는데, 힘들 이유가 없다.


얼마 전 연구의 결과로 제출한 논문이 떨어졌다. 거의 논문 개재에 근접했기에 친구는 날 걱정했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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