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L 무선 이어폰과 이제는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대하여

by 봄동

산책을 나섰다. 음악을 들으려고 윈드브레이커 주머니를 뒤진다. 이어폰 뚜껑을 연다. 평소처럼 나란히 들어있어야 할 무선 이어폰이 없다. 반대편 주머니도 뒤져본다. 역시나 없다. 아마 집안 어딘가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음악이 없는 산책은 밍숭맹숭하기 짝이 없다. 평소 걷던 거리의 반도 못가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방을 뒤져 본다. 가방에도 이어폰은 없다. 거실 책상 위, 선반 위, 한번씩 드는 배낭 속까지 뒤져 보지만 이어폰은 없다. 그렇게 하기를 20분째, 나는 이어폰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2025년 8월 어느날을 기점으로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3월이었다. 우리의 만남의 목적은 단순하고도 자명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이다. 나는 10년 가까이 음악이 꺼진 세상 속에 살았다. 그 시기에는 그 좋아하던 소설도 손에 꼽을 만큼 읽었다. 몸에 배인 관성대로 방학이면 도서관을 찾았지만, 주로 정리, 살림, 요리와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어지간히 좋은 주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음악은 책과 달리 내 몸에 배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주로 특정 시기에 특정 가수나 뮤지컬 넘버에 빠져 관련된 음악을 계속 듣는 식으로 음악을 만났다. 10대 때는 HOT와 god였고, 조규찬과 하림이다가 뮤지컬 김동욱 찾기와 헤드윅 넘버가 되었다.

음악은 교실 맨 뒷자리에 늘 엎드려 있는 학생처럼 뒷문을 열고 슬며시 내 삶에서 사라졌다. 나는 음악이 다시 내게 올 때까지 그가 사라졌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10년 만에 내게 음악을 돌려준 것은 하동균이다. 삶의 소란을 견딜 수 없었던 2019년, 우연히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를 들었다. 분노와 우울과 불안을 왔다갔다 하던 시기였다.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나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주구장창 하동균의 노래만 들었다.

내가 진짜로 그의 팬이 된 것은 2019년 12월 7일 힐링 콘서트 때이다. 그해에는 나뿐만 아니라 힘들었던 이들이 많았던지 콘서트 명이 힐링이었다. 라이브를 들으면서 내가 왜 하루종일 그의 노래만 들었는지 알수 있었다. 음악이든, 글이든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서 닿는다. 나도 진심인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동균이 열어 준 문으로 권진아, 권정열, 카더가든, 박재정 등 많은 가수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음질이 좋은 이어폰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저것 검색을 해봤지만 좋은 것은 너무 비싸고 싼 것은 음질이 별로다. 예산 범위와 음질 사이를 적절히 타협해서 내게 오게 된 것이 jbl 무선 이어폰이다.

이어폰을 구입하고 역마살도 사은품으로 같이 왔는지 그해부터 나는 정말로 많이 싸돌아다녔다. 서울로 글쓰기를 배우러 다녔고, 해마다 열리는 하동균 콘서트도 갔고, 제주도도 여행했다. 그때마다 나는 혼자였고, 내 귀에는 늘 jbl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주로 하동균의 노래를 들었고 2박 3일 서울 여행 때는 김필이, 제주도 여행 때는 박재정의 노래가 함께 했다. 혼자였지만 그 시간이 외롭거나 처량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3년 6개월을 함께 했다. 2025년 8월 jbl 이어폰은 나에게 인사도 없이 떠났다. 나는 그가 어느 한 시기의 문을 닫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더이상 남의 언어로 살지 않는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나만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세상을 나의 언어로 해석하는 연습중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동균 연말 콘서트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지만 예전처럼 하루종일 하동균의 노래를 듣지는 않는다. 이제는 딱정이가 떨어지고 돋아난 새살이 내가 되어간다.

jbl 이어폰으로 '같이 가자'나 '나는 너에게', '매듭' 같은 노래들을 들으며 하염없이 집 앞 공원을 걷다가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 달밤의 꽃향기와 상쾌하게 불어온던 봄바람을 기억한다. 아름답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다. 나는 이제 그 시기를 지나왔고 나의 언어로 세상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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