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고 난 후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원작으로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제작했다. 연출가는 이재규, 김남수, 극본은 이남규, 오보현, 김다희가 맡았다. 극 중 주인공은 박보영이 '정다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네이버에 올라와있는 소개글을 옮기자면, 정신건강의학과 근무를 처음 하게 된 간호사 '다은'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마음 시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라고 한다. 한 회차마다 새로운 정신 질환 환자의 이야기를 담고, 그와 연결된 이야기를 지닌 의료인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제부터 원작을 감상하지 않고 드라마를 시청한 시선에서 글을 써내려 가려고 한다.
정신병. 신체적인 병만큼이나 두려워하는 병,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밝히기 싫어하고 배척당하는 병. 내가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느낀 것은 모두가 살얼음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잘못 발을 디디면 풍덩하고 빠져버리는 상황. 나오려고 허우적거려도 몸은 굳어가고 축 쳐진다. 조심한다고 해도 조심하기 어려운 병인 것이다. 마지막 화에서 내가 드라마의 주제를 잘 이해했다고 전달하는 것 같은 내레이션이 나온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정신병'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한 과정이라는 것을 의료인, 정신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를 12번에 걸쳐 풀어내고 있다.
첫 화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리나 환자는 40대이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평생 엄마의 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잃어버렸다. 결국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이어졌고, 망상 증상도 보였다. 엄마는 오리를 백조로 만들기 위해 애써서 잘 포장된 백조를 만들었지만, 겉만 화려한 오리가 되었다. 잘 포장된 오리 옆의 친구 오리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하지만 속이 썩어가던 오리는 모든 걸 다 벗어던지고 춤추는 그 상황만이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백조 같이 잘 포장된 삶을 살아온 오리나는 치료 과정에서 엄마에게 거절의사를 보이며 점점 호전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정다은 간호사가 어떻게 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오게 되었는지 보여주며 사회불안장애를 가진 환자 김성식 씨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온 다은 간호사는 환자를 너무 배려해서 문제였다. 자신의 업무를 제시간에 해결하지 못했고 다른 내과 간호사들이 그 일을 떠맡게 되었다. 동료 간호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내과 수 간호사는 다은 간호사에게 정신건강의학과가 잘 맞을 것이라 말하며 진실은 숨긴 채 자신의 짐을 덜어냈다. 병원 식당에서 다은 간호사는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다은 간호사는 정신건강의학과 간호사들이 자기에 대한 험담을 나누는 것처럼 느낀다.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김성식 씨는 회사에서 상사에 의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모든 직원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드라마에서는 사회불안장애를 지닌 환자가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투명한 유리상자 속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은 간호사는 그런 김성식 씨를 잘 간호하려 도와주지만, 일이 꼬여버렸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동료 간호사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 칭찬을 해주며 다은 간호사의 걱정도, 환자의 일도 해결되며 마무리된다.
3화에서는 간호실습생 3명 중 한 명 지승재와 정다은의 친구 송유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쩌면 정신 질환 중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병일 수 있는 공황장애 이야기이다.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는다는 기사는 많이 접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공황장애를 겪는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가까우면서도 먼 질환이다. 여기서는 공황장애를 물이 차오르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숨쉬기 힘들고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어 공기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흔히들 말하는 '죽을 것 같아'를 정말 느끼는 질환이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도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진료받기를 꺼려한다. 공황이 나타나는 상황만 벗어나면 되겠지 생각하지만, 그 상황만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이 상황이 송유찬이다. 지승재, 송유찬 모두 주변인들이 발견하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설득하자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4화는 보이스피싱으로 3000만 원을 잃은 청년 정하람과 간호사 민들레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가난하다는 것이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라면 하나도 이틀에 나눠 먹어야 했던 하람. 합격전화를 받고 자신의 통장 정보를 넘기고 은행 ATM기에서 사기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 재산을 잃고 정신 질환을 앓게 된다. 민들레 간호사는 엄마가 도박을 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빚 갚기 바빴다. 대학에 가서도 장학금 받기 위해 전전긍긍했고 대출받기 제일 좋은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민들레 간호사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같은 과 황여환 의사에게 자기를 만나면 불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에피소드는 정말 인상 깊었다. 살기 위해 잡은 동아줄에게 자신의 전부를 빼앗긴 정하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선택하지 못하고 살기 위한 선택을 하는 민들레. 지금의 나에게 가장 가까운 이야기, 어쩌면 내 친구들이 겪고 있을 문제이다. 돈, 돈 거리면서 살기 싫어도 결국 돈에 목을 걸어야 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가 아닐까.
5화에서는 간호사 박수연과 딸 신하윤의 상담으로 온 엄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둘은 아이들에 집중해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워킹맘'으로 살아간다. 일 때문에 자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신하윤의 엄마는 가해자들이 하윤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신에 대한 병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병명은 가성치매. 하윤의 엄마는 그저 깜빡깜빡할 뿐이지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가 가장 소중한 하윤이마저 잊어버리면 어떡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입원하기로 결정한다. 간호사 수연은 엄마에게 부탁해 월급을 주며 아이들 돌봄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수연 동생의 요청으로 엄마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자 심한 말을 하게 되고 미안함을 느낀다. 이 상황에서 수연의 딸이 열이 나서 데리러 가야하지만 일 때문에 다른 학부모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아이는 수연에게 서운함을 표하고 그런 마음을 이해하는 수연도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이 두 사람에게 일기를 써보라는 솔루션을 주게 되고 다른 것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게 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정다은 간호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정다은 간호사가 맡았던 김서완 환자는 공시생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합격으로 게임에 빠지게 되고 현실과 게임 세상을 분리하지 못하게 된다. 이 김서완 환자는 치료를 받고 게임과 현실을 인식하게 될 수 있자, 통원치료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김서완 환자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하는 것에 굉장한 무력감과 두려움으로 자살하게 된다. 정다은 간호사는 온 정성을 다해 돌보았던 환자가 죽었다는 것에 충격으로 해리 장애를 겪고 결국 우울증까지 겪게 된다. 정다은은 우울증 환자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자신의 처지를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고 시선도 두려워했다. 그래도 치료를 진행하고 상황을 인식한 후 빠른 회복을 할 수 있었고 간호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정다은 간호사는 우울증을 겪었던 환자라서 환자, 환자의 보호자들이 싫어할까 봐 간호사를 그만두려 했지만, 수간호사의 지지로 복귀를 결정한다. 하지만 역시 보호자들의 분노, 반대가 심했고 이들은 병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열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정다은 간호사를 응원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소중한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서 날카롭게 반응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 부분이었다. 수간호사는 보호자들에게 지금 하는 말이 환자들이 사회로 돌아가면 들어야 할 말이다라고 설득하며 성화를 누그러뜨리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김서완의 이야기였다.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이기도 하고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공부만 하던 김서완은 졸업하고 보니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이 없었다. 그래서 학점만 좋으면 들어갈 수 있다는 공무원을 준비하지만 매번 한 문제 차이로 낙방한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게임을 시작했고 망상이 나타나고 치료가 되니 현실이 더 두려워지는 것. 너무 안타깝지만 무섭기도 했다. 나도 외나무다리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드라마가 현실을 너무 잘 반영했고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다는 것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정신질환을 표현하는 장면들 하나하나 공감이 잘 되었다. '나도 저랬던 적이 잠깐 있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나도 저런 상황이 오면 이겨낼 수 있으려나'와 같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겪어보지 못한 병을 표현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점에서 섬세한 표현이 잘 담긴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