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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ie et Travis Oct 27. 2024

일요일의 안양천

4

  우리의 눈보다 팔은 꽃이 난 땅에 더 밀착할 수 있으니 오른팔 끝의 집게에는 스마트한 파인더를 다물려라. 손이 보유한 광학적인 초점은 또렷한 자연색으로 인해 탄탄하게 조밀해지는 공기 속으로 뛰어내린다. 대상의 실체에 비해 인간의 무능한 입이 뻐끔대면 머리는 관용적인 색명이라도 읊어야 하는 임무를 알아차린다. 피오니 블로썸, 카민, 살몬 핑크, 카나리아, 네이플즈 옐로, 레그혼, 그리고 코발트블루. 카메라는 시퍼런 꽃으로부터 코발트블루를 강렬하게 띄운, 20센티미터 안쪽의 공중을 비틀어 셔터음을 낸다. 그들은 우리에게, 정확히는 우리의 기구에게 전사되었다. 꽃들은 유일한 시선으로부터 더 이상 피할 데가 없으면 되려 색을 두텁게 칠하고, 빛깔의 조직을 짠다. 오 이런 건 본 적이 없는데(틀림없이 첫낯이 아닌 꽃이라도), 오 이런 화신은! 셔터음이 신나게 울린다. 그런 후에도 계속해서 피해야만 한다면, 그들은 미학의 파괴를 무릅쓰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으로 변신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달을 등지고, 오직 강을 따르는 깊은 밤을 향해 나아가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어둠의 나머지를 체계적으로 점유하는 것을 응시하게 된다. 가냘프지만 활기차고, 자유롭지만 비의지적인 명암 속의 연둣빛, 길에 붙어 빛의 간격대로 너울거리는 사면의 잔디들이다. 현재의 정의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어두운 계절 내내 수월히 조화되던 시멘트 바닥조차 우리에게 어떤 종언을 하나 만들어주고서, 그 종언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가 걸리든 변신을 허비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반대 방향으로 서술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으로부터 무엇이 되어버렸다고 말하지 않겠다.

  현재의 시멘트 땅이 꽃들로 소급한 길을 통해 우리를 집에 조금 더 가까이 데려다주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물 위에 바짝 붙어 색다르게 떠 있는 데크길은 그보다 평범한 모든 여로를 소급하고 있었다. 신비한 경험을 할 땐 하더라도 아무튼 우리는 귀가해야 하니까. 한두 시간 안으로 아마도 카모가와 — 안양천이라고 새로이 이름 붙여도 좋고 — 의 진짜 종언에 해당하는 무슨 전철역에 다다르고야 말 테니까.

  그토록 진심으로 알아야 했던 풍경. 안양천이 우리에게 내리는 인상을 단번에, 실시간적으로 소유하거나 알아오던 것을 의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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