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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꼭 그랬다. 너의 이미지와 나의 이미지가 맺고 있는 관계를 내포할 뿐 아니라 그 이미지가 지내온 나날을 통해서 공통의 현재가 증명되었다. 그것은 교토를 관통하는, 서쪽의 원류 사지키가타케야마桟敷ヶ岳山의 총아이지만 고풍스러운 맛을 보려면 그것과 전혀 반대처럼 보이는 동쪽의 타카노가와高野川를 거쳐야만 하는, <카모가와鴨川>에 대한 기억이었다. 정확히 스무 해 전이군. 푸르고 젊은 어둠이 기억과 관계되었고, 그로부터 지금의 우리가 솟아올랐다. 확실히 우리는 평화롭다기보다는 이미 약간 안심하지 못한 채 걷고 있었다. 그렇지. 이것은 이야기된 적이 있는 우리이다. 이 심적 불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야기되었다가 오랫동안 까맣게 잊힌 것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이었다.
급류가 내는 적막한 외침. 떠내려가는 물의 구령은 조금씩 떠오르는 포말과 촘촘하게 부딪힌다. 무중력의 환상인 양 가볍게 흐트러뜨리는 브라운 운동과 모든 것을 내리누르는 육중한 속도감, 다시 말하면 정지처럼 보이게 만드는 액체의 운동과 정지처럼 보인 운동을 삼켜버린 액체의 질량, 하천이라고 하는 특정된 무형은 그 표상이 — 초콜릿 상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치 — 너무나 독보적이라 선명하게 상징화된 기억을 예비하고 있다. 오래전에 카모가와가 그런 수법으로 기억을 저장했던 것처럼, 이런 식으로 우리는 기억 속에서 임시로 거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어둠은 곧 원숙해졌다. 도시의 불빛을 제하고도 어딘가 밝았다. 우리는 이 저녁, 진작 슈퍼문이 등장했음을 확인한 바 있었다. 카모가와에서 종종 달을 보았었는가? 가난한 유학생들을 품은 코포타니가와의 2층을 오르는 철계단에서 붉은 보름달을 본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교토를 떠나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카모가와의 기억은 달의 디테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달에게는 강의 추억을 그리는 삽화적인 기능이 없다. 그러나 종전보다 더 좋은 것은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법, 오늘의 달은 서술되려는 실존의 유의미한 장식이 되어 확장적인 기능을 자처한다. 주상복합 스타일의 오뚝한 두 건물의 꼭대기 사이가 만든 브이형의 하늘에 달이 쏙 들어가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카모가와에 달을 걸기로 계약한 것이나 다름없는 친애를 담아, 우리는 점점 밝아지려고 하는 그 달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광량이 부족한 환경에서 이미지의 왜곡에 추격받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좋은 시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물리적 각인을 위해 사진으로 남겼다. 달빛을 뒤통수에 두고 우리들은 계속 강을 따라 걸었다. 강변을 따라 색색의 꽃들을 심어놓은 모양을 보았다. 그것들은 절정의 꽃들과는 달리 봄에 대한 욕망이 무르익어 팽팽히 당겨진 주목을 끌지 않으려고 이렇게 외진 곳에서 완벽한 순수를 꽃피워냈다.
우리는 서서 그것을 응시했다. 더 가까이 허리를 숙였다.
우리는 우리 말고 누구도 그 경계심 없는 미학의 전개를 눈여기지 않게 만들었다.
꽃들은 자기들 말고 누구도 중요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우리뿐일 수 있으며, 우리뿐일 때 그로부터 꽃의 중요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인간과 개와 자전거, 산책하던 다른 존재들은, 글쎄, 공간화되었다고 말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