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가계부 실전후기#비트코인#디지털생존배낭#치토스 따조
분류기호: 327.2 (경제학 - 증권, 투자)
남편과 저의 투자는 대체로 평화로운 '2인 1조'였지만, 초반에 딱 한 번 커다란 시각 차이를 보이며 팽팽하게 맞선 적이 있습니다. 바로 '비트코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처음 비트코인 투자를 제안했을 때,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제 머릿속에 비트코인은 그저 장난감 '카지노 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따조로 고스톱을 치던 시절
'카지노 칩'..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대학 시절이 떠오릅니다. 친구의 자취집에 모여 재미 삼아 고스톱을 칠 때면 10원짜리 동전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쳐야 했습니다. 계속 만지다 보면 손에서 비릿한 쇠 냄새도 나고, 주머니가 무거워지기 일쑤였죠.
그때 10원짜리 동전을 대신한 기가 막힌 대체품이 바로 '따조'였습니다. 당시 엄청난 유행이었던 치토스 과자 봉지를 뜯으면 나오던 동그란 플라스틱 딱지 말입니다. 마침 한 친구가 과자를 먹으며 모아둔 따조가 200~300개쯤 있었고, 우리는 동전 대신 귀여운 따조를 카지노 칩처럼 활용하며 재밌게 놀았죠.
제게 비트코인은 딱 그 '따조' 같았습니다.
"내가 미쳤어? 내 피 같은 진짜 돈을 주고 만질 수도 없는 따조를 왜 사! “
'세제 이름 같은 동전'
제가 비트코인이라는 낯선 단어를 처음 인지한 건 우연히 TV 예능 <신서유기>를 보면서였습니다. 스피드 퀴즈 코너에서 정답이 '비트코인'이었는데, 다들 설명을 어떻게 할지 몰라하니 힌트를 "세제 이름 그리고 동전!"이라고 주더라고요. 호기심에 스마트폰을 켜서 검색해 본 저는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실체도 없는 그 '세제 같은 동전' 한 개 가격이 무려 500만 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뒤, 이번에는 진지한 경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또 한 번 비트코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에서는 세 명의 사람이 연달아 비트코인으로 커피를 사 먹는 실험을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커피를 결제하고 바로 다음 사람이 똑같은 커피를 주문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코인 시세가 널뛰며 결제해야 할 코인 개수가 확 달라져 버리는 겁니다.
그 어이없는 장면을 보며 저는 확신에 차서 혀를 찼죠.
"나는 커피 한 잔에 5000원, 바로 뒷사람은 4200원. 이런 식이면 어떻게 물건을 사? 뭐, 복불복 게임이야? 저딴 게 무슨 화폐야. 곧 없어지겠구먼!"
그 후로 비트코인은 제 인생의 가계부에서 영원히 지워진 단어였습니다. 적어도 남편이 책 한 권을 들이밀기 전까지는요.
무쇠 같던 고집을 산산조각 낸 책 한 권
어느 날 남편은 자신이 챙겨보는 경제 유튜버가 쓴 책이라며 "일단 한 번만 읽어보라"라고 간곡히 권유했습니다. 속는 셈 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 한 권이, 무쇠 같던 제 고집과 경제관념을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책을 다 덮고 난 뒤, 제 머릿속에 번쩍하고 하나의 문장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비트코인은 돈 대신 쓰려는 게 아니구나. 이건 화폐가 아니라 자산이구나.'
우리가 실물 금(金)을 비싸게 사 모으지만, 당장 금덩어리를 들고 마트에 가서 두부를 살 수는 없습니다(베네수엘라 일부 지역은 가능하다네요). 하지만 금은 가치를 저장하는 훌륭한 자산이죠. 그리고 화폐 가치가 없어진다 해도 반지나 팔찌로 만들 수도 있고요(비트코인은 이걸 할 수 없어서 망설였습니다). 다만 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무겁고, 눈에 보이기 때문에 빼앗기기 쉽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생존 배낭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살면서, 제 마음 한구석에는 늘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 땅에 다시 전쟁이 나거나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다면? 제가 평생 가계부를 쓰며 일궈낸 자산을 온전히 들고 피난을 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암호 덩어리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몸만 무사히 국경을 넘으면, 지구 반대편 그 어떤 컴퓨터에서든 비밀번호만으로 내 자산을 온전히 복구해 꺼내 쓸 수 있죠.
비트코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디지털 따조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 내 가족을 지켜줄 가장 가볍고 완벽한 '디지털 생존 배낭'이었던 겁니다.
결국 저희 부부는 자산 배분 차원에서 여유 자금의 일부를 떼어 생애 처음으로 디지털 자산에 투자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단돈 600원짜리 새우깡 앞에서도 외식비냐 식비냐를 두고 3시간을 햄릿처럼 고민하던 짠순이가, 허공에 떠 있는 암호 덩어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갑을 연 것입니다.
물론, 제 깐깐한 의심병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비트코인의 보안이 뚫릴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들려왔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해킹 위험이 있는 온라인 거래소에 코인을 두지 않고, 오프라인 USB 형태의 '콜드지갑'에 안전하게 옮겨 담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출금하지 않고 철통 방어 중입니다.
양자컴퓨터의 위협을 본질적으로 막으려면 결국 비트코인 네트워크 자체가 양자내성암호(PQC)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복잡한 기술적 문제는 '비트코인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제 재산까지 알아서 잘 방어해 주길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지
가끔 비트코인 시세를 볼 때면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집니다. 만약 남편이 제 닫힌 마음을 두드려 그 책을 쥐여주지 않았다면, 저는 영원히 '따조' 타령만 하며 거대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룰을 비웃기만 했을 테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무지'입니다.
그리고 내 세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가장 훌륭한 무기는, 역시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가족' 그리고 '한 권의 책 《돈의 규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