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가계부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4년 가계부 실전후기#생어우환사어안락#결핍은 무기#절실함의 힘

by 두번째지니

[17화] 결핍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현실을 마주할 용기


분류기호: 199.1 (윤리학 - 삶의 지혜와 인생관)


가끔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남편이 대기업 직원이 아니었고, 아빠가 내게 1억 5천만 원의 유산을 남겨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더 가난했다면, 더 독했을 겁니다

결혼하자마자 1,500만 원의 빚에 쫓겨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으니, 남편의 직장과 상관없이 가계부는 무조건 썼을 겁니다. 사실 남편이 대기업에 다녔다고는 하지만, 신혼 초 연봉은 대기업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죠. 대기업의 꽃이라는 성과급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2004년인가, 성과급도 아닌 위로금(?) 명목으로 '100만 원'을 처음 받았을 때, 저희 부부가 세상을 다 가진 듯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만약 남편이 그런 안정적인 회사가 아닌 곳에 다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저는 가계부를 한 5년쯤 악착같이 써보다가, '아, 이렇게 월급만 모으고 살아서는 평생 답이 없겠다'라는 서늘한 현실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을 겁니다.

평범한 주부들이 생계가 막막해져 닥치는 대로 부업을 하다가 끝내 사업가로 성공하는 TV 속 흔한 서사처럼, 저 역시 어떻게든 인생을 뒤집을 특단의 조치를(사업이든 부업이든 뭐든)를 치열하게 준비했을 겁니다.


영재로 잘 커가는 제 아들을 보고 아는 동생이 아이를 낳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언니, 우리 애도 언니 아들처럼 키우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넌 못해."

당황하는 동생에게 저는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넌 나처럼 독하게 하기엔, 너무 부자야."


대한민국에서 교육비는 결국 부모의 경제력에서 결판이 납니다. 가난했기에, 미래에 학원비를 댈 자신이 없었기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뇌가 형성되는 시기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선행 투자'를 해야만 했습니다. [4화]

아들의 훌륭한 성과는 뛰어난 머리나 대단한 재력 덕분이 아니라, 250권의 육아서를 씹어 먹듯 읽어내야만 했던 짠순이 엄마의 그 벼랑 끝 '절실함'이 빚어낸 결과라고 저는 믿습니다.


맹자님 말씀

저는 시련과 고난에서 나오는 결핍이야말로 인간을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하(下)〉 편에는 제가 〈평온의 기도〉 다음으로 가슴에 품고 사는 훌륭한 문장이 있습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必先苦其心志)

뼈와 근육을 수고롭게 하며(勞其筋骨)

생활을 빈궁하게 하여(空乏其身)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니(行拂亂其所爲)

이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길러주어(所以動心忍性)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曾益其所不能)


그리고 맹자님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생어우환 사어안락(生於憂患 死於安樂)'

"사람은 근심과 고난 속에서 살아남아 성장하고, 편안함과 즐거움 속에서 도태되어 죽는다."


제가 만약 더 안 좋은 상황(결핍)에 놓여 있었더라도, 맹자님의 말씀처럼 그 고단한 훈련 과정을 거치며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수많은 '만약'들

반대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내게 주어졌던 조건들이 그저 평탄하고 편안하기만 했다면 어땠을까요?


가끔 고요한 식탁에 앉아 지난 24년의 가계부를 넘기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또 다른 '만약'이라는 가정법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만약, 시부모님이 당신들의 노후를 준비해 두신 분들이었다면.

만약, 친정아빠가 내 결혼 당시 든든한 재정적 지원을 미리 해주셨더라면.


시작부터 1,500만 원이라는 빚을 짊어지지 않았을 테니, 600원짜리 새우깡 앞에서도 3시간을 서성이는 지독한 짠순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두 번째 전셋집에서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사히 머물 수 없었더라면.

물론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병설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걸어서 3분, 중학교가 8분, 고등학교가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던 그 완벽한 환경에 정착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저는 2년마다 전셋집을 옮겨 다니는 불안감에 쫓겨 오직 '내 집 마련'이라는 단 하나의 외길에만 갇혀 살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감히 주식이나 자본주의라는 더 넓은 투자의 세계로 눈을 돌릴 심리적, 재정적 여백을 갖지 못했겠죠.


만약, 제게 미국 주식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믿음직한 첫 번째 PB가 광화문 지점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내 곁에 있었더라면.

만약, 새로 만난 두 번째 PB가 내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유능했더라면.

만약, 가까운 지인들 중에 매일 만나 투자와 경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멘토나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저는 아마도 누군가의 판단에 내 자산을 평생 맡긴 채, 스스로 경제 기사를 읽고 밤을 새워가며 기업을 분석하는 고독한 일인 사서(PB)가 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워런 버핏의 그 유명한 10년 내기가 2017년 12월에 끝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미국 주식을 그토록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더라면.

만약, 남편이 나와 똑같이 보수적인 투자 성향이라서 개별 종목 투자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처음 투자를 시작할 무렵 미국 주식 시장이 지독한 하락장이었더라면.

그리고 만약,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폭락장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저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거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미친 듯이 경제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고, 책을 씹어 삼키듯 읽으며 공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완벽한 톱니바퀴

나를 짓눌렀던 가족의 재정적 결핍, 나를 실망시켰던 금융 전문가들, 혼자 끙끙 앓아야 했던 고립감, 그리고 시대의 위기들. 그 당시에는 나를 억울하고 힘들게만 했던 그 모든 조건들이, 지금 돌아보니 하나라도 빠졌으면 안 되었을 완벽한 '톱니바퀴'였습니다.


그 결핍과 불운, 우연의 톱니바퀴들이 무서운 힘으로 맞물려 돌아가며 내 등을 거칠게 떠밀었습니다. 안주하고 싶어 하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워, 기어코 책을 펼치게 하고 스스로 자본주의의 룰을 깨우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저 수많은 조건 중 단 하나라도 내 입맛에 맞게 편안했더라면, 저는 평생을 '따조' 타령만 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누군가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넘겨준 채 무지하고도 편안하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저를 키운 건 팔 할이 '결핍'이었고, 저를 완성한 건 그 결핍이 만들어낸 '불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미친 듯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펜을 쥐고 써 내려간 24년의 가계부와 지독한 공부가, 결국 저를 그 어떤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제 저는 저에게 주어졌던 그 모든 결핍과 얄궂은 우연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가계부를 안 쓰는 진짜 이유

이러한 자신의 뼈아픈 상황을 피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직시하려면, 반드시 '숫자'가 필요합니다.

저는 가계부 안에 최소 5년 치의 '빅데이터'가 쌓여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 현실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가계부를 쓰지 않는 이유가 그저 "귀찮아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구독 중인 채널의 글에서 제 뒤통수를 치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가계부를 안 쓰는 이유는 귀찮아서가 아니라, '불편해서'다."


자신이 번 돈과 쓴 돈의 참담한 민낯을 숫자로 직면하는 것, 그 초라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뼈아프고 불편하기 때문에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는 것이었죠.


그 글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불안해서 살 수가 없는 성격이라,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24년이나 가계부를 썼다는 사실을요.


오늘 밤, 가계부를 펼치세요

저는 하루를 무가치하게 보내고 밤에 잠자리에 누워 "미래의 나야, 잘 부탁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삶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하지만 저도 가끔, 그러기도 합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나야, 그때 네가 그렇게 악착같이 버텨준 덕분에 오늘 내가 이렇게 두 다리 뻗고 잘 자네. 정말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저는 제 마음에 쏙 드는 제 집에 살면서, 24년간 1원 단위와 싸워온 과거의 저 자신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끔 자신의 얄팍한 노후 준비를 두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네, 맞습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죠.

그 고생과 대가를 본인이 치르든, 자식이 짊어지든, 나라가 세금으로 메우든, 사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떻게든 살아가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가계부를 쓰고 내 현실의 숫자를 직면하면, 저 막연한 "어떻게든"이라는 운명을 "내가 통제하고 원하는 방식대로" 완벽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제가 24년의 삶으로 그걸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 당장 가계부를 펼치고 불편한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 더 이상 무책임한 짐을 떠넘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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