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가계부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4년 가계부 실전후기#AI분석#대기업#팔자#운

by 두번째지니

[16화] 운을 실력으로 바꾼 24년 : AI가 분석한 나의 7억 원


분류기호: 595 (가계 관리) / 327.8 (개인 자산 관리)


이제 제 이야기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내 집 마련'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먼저 스포(?)를 하자면, 모든 비용(집값, 인테리어, 가구, 가전, 취득세 등)을 합한 총액 9억 6천만 원. 저희가 악착같이 모은 현금 7억 1천만 원에, 모자란 2억 5천만 원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AI에게 물어봤습니다

글을 쓰려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23년 동안 모은 이 7억 원이라는 숫자가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인지 말이죠.

그래서 제미나이(Gemini), 챗GPT, 클로드(Claude)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2002년부터 2024년까지, 투자 수익 없이 오직 월급과 예적금 이자로만 7억 1천만 원을 모았다면 이건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제미나이: 이는 대한민국 직장인 기준 최상위권의 저축 능력과 자제력을 증명합니다. 단순 계산으로 매월 약 257만 원씩 단 한 달도 빠짐없이 저축해야 하는 금액입니다. 레버리지가 판치는 시대에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안전 자산만으로 7억 원대의 순수 현금을 확보한 사례는 통계적으로 매우 드문, 상위 1%의 지출 통제 능력입니다.(저의 서사를 잘 아는 제미나이죠)


챗GPT: 근로소득만으로는 상당히 잘 모은 편입니다. 특히 투자 수익 없이 예금 위주였다면 더욱 의미 있는 금액입니다. 소득이 평균 이상이었거나 소비 관리가 매우 철저했거나, 두 가지 모두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클로드: 순수 근로소득과 예적금만으로 이 금액을 모으는 것은 상위 10% 이내의 절약·저축 능력을 보여줍니다. 다만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2024년 기준 약 10억+)과 비교하면 부동산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졌을 수 있다는 점도 현실적으로 참고할 만합니다.


"대기업 남편 덕분이잖아요"

제가 굳이 AI의 입을 빌려 이 숫자를 증명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투자 수익 없이 내 집 마련 자금 7억 1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남편이 대기업 직원이니까 가능했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절반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제 주변에서도 저를 '대기업 다니는 남편 + 친정의 유산 = 팔자 좋은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막대한 사교육비 없이도 좋은 대학에 간 똑똑한 아들까지 두었으니, 그들 눈엔 제 팔자 좋음이 절정에 달해 보이겠죠.

속으로는 억울할 때도 있었지만, 치열했던 24년 서사를 일일이 붙잡고 해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냥 '팔자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의 숫자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결혼 당시 57세셨던 시부모님께 매달 20만 원, 2005년부터 30만 원,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매달 40만 원의 생활비를 꾸준히 드리고 있습니다. 2011년 (베트남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가 되시며 병원비 부담은 (조금) 덜었지만, 저에게 '시댁'은 언제 얼마 큼의 목돈이 들어갈지 모르는 커다란 재무적 리스크죠.

게다가 남편이 입사한 1999년의 LG텔레콤 대졸 초봉은 IMF 직후라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가계부에 적힌 남편의 2002년 연봉은 2,580만 원, 2005년이 되어서야 3,480만 원 수준이었으니까요.

한여름에도 에어컨 대신 행주를

저는 그 한정된 월급을 쥐어짜기 위해 지독하게 살았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를 늘 중얼거리며 살았습니다.[14화]


신혼 초, 아빠가 13평 다가구 주택에 달아주신 9평형 룸에어컨은 제가 임신할 때까지 거실의 장식품이었습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켜는 대신, 두부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던 행주를 찬물에 적셔 목에 두르고 선풍기 한 대로 버텼습니다.

오죽하면 2005년 8월, 임신 3개월 차에 옆집 아주머니께서 "새댁~ 임신했어?"라고 하시길래 어떻게 아셨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을까요.

"저 집 에어컨 호스에서 물 떨어지는 걸 내가 이사 오고 처음 봐서 알았지!"


아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아서에서 "유태인 엄마는 아기에게 시각적 자극을 주기 위해 수유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구절을 읽고, 저는 당장 색깔이 모두 다른 저렴한 티셔츠 7장을 사서 매일 상의를 바꿔 입으며 모유 수유를 했습니다. 육아서의 내용을 어떻게든 제 상황에 맞게, 가장 돈을 덜 쓰는 방법으로 적용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2023년 여름방학부터 2024년 수능 전날까지, 수험생 아들과 항상 거실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이때의 힘듦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5개 틀린 수능 성적표로 저의 노고를 위로해 주었죠.


만약 그때 무리하게 집을 샀다면

만약 제가 2015년 두 번째 전셋집 고비[5화] 때, 어이없는 수수료까지 내며 전세를 연장하는 대신 무리하게 빚을 내어 아파트를 샀다면 어땠을까요?

(실제로 그때 엄청 고민을 했지만, 공휴일에도 쉬지 않는 은행이 무서워서 포기했죠)

2016년에 갑작스레 받은 아빠의 유산 1억 5천만 원은 고스란히 그 대출금을 갚는 데 쓰였을 겁니다.

그랬다면 저는 미국 주식이라는 세상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을 테고, 지금의 '금융 자산 10억'은 흔적도 없었겠죠.

반대로 빚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 유산 1억 5천만 원을 늘 하던 대로 예금 통장에만 묵혀두었다면?

자본주의의 인플레이션을 정통으로 맞으며 자산 가치가 쪼그라든, 상상만 해도 아찔한 결과를 맞이했을 겁니다.


팔자 좋은 사람이 아니라, 팔자 좋게 만든 사람

겸손을 빼고 말하면 저는 '팔자 좋은 사람'이 아니라 '팔자 좋게 만든 사람'입니다.

제게 주어진 운(대기업 직원 남편, 1억 5천만 원의 유산, 똑똑한 아들)이 지금의 '내 집과 10억 가량의 금융 자산, 명문대생'으로 모양을 바꾼 것은, 결코 '운'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기적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각자 나름의 조건과 운이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조건, 똑같은 운이 주어져도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집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조건들을 최상의 결과로 빚어내기 위해, 지난 24년간 '가계부 쓰기'라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티 안 나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했습니다.


운을 실력으로, 숫자를 자산으로 만들어낸 힘.


저에게 가계부는 단순한 장부가 아니라, 제 삶을 지켜낸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무기' 였다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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