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가계부 실전후기#코로나#로보어드바이저 #테슬라#엔비디아
분류기호: 327.85 (경제학 - 증권투자, 주식투자)
저희 가족은 아반떼를 현금으로 쿨하게(?) 뽑은 이후, 국내 여행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언제부턴가 어느 도시를 가든 그곳의 '케이블카'는 무조건 타야 한다는 저희 집만의 소소한 전통도 생겼죠.
목포 전망대 위에서 내린 결정
2019년 10월, 목포로 여행을 갔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길다는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독특한 구조의 '고하도 전망대'에 내렸죠. 멋진 바다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저희 부부는 그 낭만적인 전망대 위에서 아주 진지하게 '투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은행과 굿바이를 선언한 뒤 열심히 공부하며 S&P 500에 투자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자산을 분산해야 안전하다는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채권과 금과 주식을 쪼개야 저희 집 상황에 맞는 것인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경제 기사에서 대한민국 1세대 로보어드바이저 핀테크 기업 '에임(AIM)'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명 헤지펀드에서 활약한 금융공학 전문가가 만든 이 기업은, 거액 자산가들만 누리던 고도화된 자산 관리 시스템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누리게 하겠다는 철학으로 세워졌습니다. 수수료는 고작 연 1%. (은행에서 펀드를 가입하면 선취수수료만 3%에, 수익이 나면 후취수수료까지 떼어가죠.)
은행을 박차고 나온 저희 부부의 '세 번째 PB'로 임명하기에 완벽한 스펙 아닐까요?
케이블카 안에서 에임 이야기를 꺼냈고, 고하도 전망대에 내리자마자 남편은 스마트폰을 켜서 곧장 5,000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이 똑똑한 AI 투자 로봇이 어떤 비율로 자산을 배분하고 언제 리밸런싱을 하는지 직접 보면서, 우리도 그 기준을 따라 배워보자는 심산이었죠.
그리고 4개월 뒤,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2020년 2월.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아찔합니다.
평생 처음 겪어보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고, 폭락장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도 너무 무서웠고, 매일 폭락하는 파란색 숫자도 처음이라 정신을 차리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 지옥 같은 공포 속에서, 저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말했습니다.
"괜찮아. 한 5년 정도만 버티면 원금은 무조건 회복할 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시가 고점에서 바닥을 치는 데 1년 반이 걸렸고, 전고점을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는 역사를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식 창을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이 돈은 적어도 10년은 꺼내 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 자금이었기에 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AI PB의 진가
그리고 그때, 저희의 세 번째 PB인 인공지능 에임의 진가를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주식 시장이 반토막이 나며 피를 흘릴 때, 에임은 달러 채권과 금 등 안전 자산으로 기가 막히게 방어를 해냈습니다. 전체 자산 하락 폭이 주식 시장의 5분의 1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새로운 PB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음을 후회하기 시작할 무렵, 최소 5년은 걸릴 줄 알았던 미국 주식 시장이 겨우 폭락 한 달 만인 3월부터 미친 듯이 V자로 반등하며 훨훨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이때도 처음 겪어보는 폭등장이라서 정신이 없었죠.
비결은 바로 미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무제한 양적완화(돈 풀기)'였습니다.
사실 제가 은행 PB의 권유를 뿌리치고 ELS 재가입을 멈췄던 이유도 저 '양적완화'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미국은 돈을 꽤 풀고 있었고, 전문가들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시장에 돈이 넘쳐나니 조만간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미국은 헬리콥터가 아니라 아예 폭격기를 동원해 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그 결과 하락이 시작된 지 불과 6개월 만인 2020년 8월, 미국 증시는 코로나 이전의 전고점을 완벽히 회복해 버렸습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가파른 회복이었죠.
그 후부터 에임은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리밸런싱' 알림이 오면 시장의 흐름이 변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죠. 비록 에임이 담는 채권이나 낯선 종목들을 개인이 똑같이 따라 사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1%의 수수료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멘토였습니다.
부부의 투자 성향은 극과 극
하지만 여기서 저희 부부의 투자 성향이 완벽하게 갈라집니다.
보수적인 저는 S&P 500과 AI의 방어율에 만족했지만, 개별 종목을 파고들기 시작한 남편의 눈에는 1%의 수수료조차 너무 비싸 보였고 수익률도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저희가 처음 에임에 가입할 때 투자 목표를 '내 집 마련'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AI가 굉장히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를 짰거든요.)
중학생 수준으로 시작한 저와 달리 유튜브로 글로벌 경제를 흡수한 남편은 마치 대학원생처럼 과감했습니다. S&P 500 지수만 맹신하던 제게 콧방귀를 뀌며 남편이 가장 사랑한 주식은 바로 '테슬라(Tesla)'였습니다. 그 무모함에 제가 얼마나 잔소리를 쏟아냈던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편의 수익률은 엄청났습니다. 뒤이어 투자한 '엔비디아(NVIDIA)'까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땐 남편이 '워런 버핏'이 되어가고, 저는 소원대로(!) 그의 아내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
2020년 2월부터 8월까지의 6개월.
결과론적으로 보면 인생을 바꿀 절호의 '매수 기회'였지만, 폭락장 한가운데 서 있던 그때의 저희는 매일이 지옥이자 공포였습니다. 사실 그때 집 마련을 위해 대기 중이던 예적금을 몽땅 주식시장에 던졌더라면 지금쯤 자산이 5배는 족히 넘었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저희는 절대 그런 모험을 하진 못했을 겁니다. 폭락의 끝이 어디인지 그땐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저희의 피땀눈물 돈(어린아이)은 도저히 위험한 주식시장(물가)에 내놓을 수 없었지요.
그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처음 마주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저희 부부는 미친 듯이 공부만 했습니다.
코로나로 도서관이 문을 닫자, 저도 자연스럽게 '유튜브'라는 새로운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수많은 훌륭한 경제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흡수하며(다시 ‘소수몽키’님도 뵙게 되었죠), 개별 종목 투자를 하는 남편을 마음 놓고 지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끔찍한 위기의 순간이라도,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하나입니다.
"지겹고 힘든 공부를 묵묵히, 꾸준하게 해 나가는 것"
그 6개월 동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공부밖에 없었던 덕분에, 저희 부부의 투자 레벨은 '퀀텀 점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세 번째 PB 에임과도 조용히 작별을 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