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가족사진을 찍으면 든 생각
육아를 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익살스러운 미소가 매력적인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다. 많은 이들이 인생작으로 꼽기도 하는데,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너무 슬펐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유태인 주인공 귀도가 아들 조수아와 함께 나치에 끌려가게 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을 위해 극한의 수용소 생활도 즐거운 게임처럼 거짓말하며 살아내는 내용이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란 세상과 같은 것이기에 아이는 아빠가 하는 모든 말을 사실처럼 믿고 따른다. 수용소를 오가는 거대한 탱크는 게임을 이긴 후에 얻게 될 훌륭한 보상으로 포장되고, 탈출이 발각돼 나치에게 끌려가는 아버지는 그 순간에도 승전한 게임 속 플레이어처럼 당당하게 걸으며 아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선사한다. 진짜 사실을 아는 우리들은 극 중 아버지의 거짓말이 터무니없을수록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순진무구한 자녀에게 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속 깊은 마음을 절절히 느끼며 더욱 오열하게 된다.
이제 두 돌을 앞두고 있는 딸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운데, 이유인즉 부모와의 교감이 훨씬 정교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말이 빠른 편은 아니라 대화를 수월하게 하는 상태는 아니지만, 나의 언어를 웬만해선 다 알아듣고 이해한다. 간단한 심부름들은 곧잘 수행할 줄 알고 뚜렷하게 자기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입기 싫은 옷은 강력하게 거부해서 어린이집 등원 준비가 힘들어질 정도고, 음식에 대한 선호도 명확해져서 골고루 먹이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아직 언어적 표현이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손을 이용해 의사표현을 잘하는데, 무언가 먹고 싶을 때 해당 음식을 강력하게 포인팅하며 자기 입에 가져다 놓는 시늉을 한다. 배가 고플수록 손가락은 무척 빨라져서 마치 수어라도 하듯 손이 빨라지는데 보고 있으면 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다.
자아가 성장하는 만큼 고집도 보통이 아닌데 이젠 그런 시아를 앞에 두고 말로 설득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왜 맨발로 신발장에 뛰쳐나가 킥보드에 앉으면 안 되는지, 왜 숟가락과 포크를 던지면 안 되는지, 셀프 양치 후에 엄마의 보충 양치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 줘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냥 ‘안돼’라고 단호하게 끝내거나 혹은 내 선에서 행동을 제지하면 마무리되는 일들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울거나 계속하겠다고 하도 저항하는 탓에 조목조목 설명해 줘야 끝이 난다. 완전히 내 말을 이해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문제행동을 멈추거나, 눈치를 보며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 분명 상호작용이 되는 것으로 보이긴 한다.
갈수록 고집쟁이인 딸의 진면목이 드러나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감정표현이나 애착의 표현이 좀 더 정교하고 다양해지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심쿵하고 마음이 물에 젖어드는 스펀지처럼 촉촉해지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같이 잠들기 전에 대충 입은 내가 추워 보였는지 열심히 겨울 담요를 찾더니 나를 담요로 덮어주며 토닥여주기도 하고, 차에서 졸렸는지 옆에 앉은 내 손을 자신의 볼에 갖다 대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어린이집 친구가 하고 다니는 게 부러웠는지 자신도 하츄핑 팔찌가 갖고 싶다고 애절하게 엄마를 쳐다보기도 하고, 그렇게 손에 넣은 팔찌 두 개를 엄마와 자기 손목에 나란히 걸어주고는 커플이라도 되는 마냥 뿌듯한 미소 짓기도 한다. 불과 2년 만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로 큰 아기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몽글몽글 달달한 솜사탕이라도 피어오르는 듯 맘이 몽실몽실해진다. 그리고 이런 행복은 언제 느껴 보았던 감정인가 문득 과거를 헤집어 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같다. 아기를 키우는 건 이런 마음이구나 싶다. 단 한 번도 꺼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 구슬을 들어 올려보는 기분이다.
엊그제는 키즈카페에서 오른쪽 발가락을 접질려 두 발가락에 반창고를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아이가 다가와 계속해서 만지려 했다. 그러더니 자기 발에도 똑같은 반창고를 해달라고 열심히 표현하는 게 아닌가.
“엄마가 발을 아야 해서 반창고를 붙일 수밖에 없었어. 시아는 발이 아프지 않으니까 반창고 붙이지 않아도 돼”라고 했더니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시아도 엄마 아픈 거 같이 ‘아야’해주고 싶어?”라고 물었더니 맞다고 마구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결국 모녀가 함께 반창고를 붙이고 기념으로 사진까지 찍었다. 사진을 물끄러미 보더니 무언가 빠졌다고 생각했는지 아빠를 찾는다. 아빠가 소외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빠도 어서 반창고를 붙이란다. 얼떨결에 우리 세명 다 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발가락 가족사진을 찍었다.
거울처럼 부모를 따라가는 아이를 볼 수록 책임감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건강하고 바르게, 행복한 아이로 길러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깊어진다. 습자지처럼 내가 하는 말을 흡수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하나의 완성된 인격으로 바로 서야 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또한 이전에는 별생각 없이 했던 말과 행동도 다시 한 번씩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과거도 여러 차례 되돌아보게 된다. 하이킥 하고 싶은 순간이 많은.. 말 그대로 불완전한 인간 그 자체였던 내 부족한 모습들이 떠오르며 남은 날들을 어떻게 개선해 낼까 생각해 본다. 쉽지 않지만 나아져야 한다. 이젠 나 혼자만을 위한 삶을 건사하는 게 아니라, 내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나를 통해 바라볼 세상이 좀 더 바르고 희망적이고,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찰 수 있었으면 좋겠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판타지까진 아니라도,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값지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따듯한 지지로 가득 찬 세계가 아이의 삶 속에 피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한 세상인 나부터 스스로를 지지하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 그렇게 아이가 엄마를 키워내나 보다 싶다. 엄마야말로 아직 성장 중인 게 분명하다.